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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축복을 누리라 (눅5:1-7)
이목사01-19 17:20 | HIT :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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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이란 분이 쓴 시 중에 <만남>이란 시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 시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 여러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만남이 어떤 만남일까요? 당연히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어야 될줄로 믿는다. 힘이 들 때 힘이 되어주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해 줄 수 있는 만남... 이것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축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 많이 벌어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남들이 우러러보는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라 생각합니까? 아니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것입니까? 분명히 이러한 것도 중요하고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축복이 있습니다. 바로 ‘만남의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만남이 왜 중요한 축복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갈 때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만남은 우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이와 같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와 누구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베드로라는 사람과 예수님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원래 그저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과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무명한 자에서 유명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이 180도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저 평범한 어부로 살다가 말 인생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어 예수님과 만남은 인생 최고의 만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특별한 만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더불어 이 만남을 통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만남이 예수님과의 만남임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지는 놀라운 축복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하루하루 고기를 잡아 근근이 생활하는 직업적인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직업적인 어부라는 말에 드러나는 것처럼 그는 다른 일은 몰라도 고기 잡는 대는 전문가였습니다. 어느 때 어디 장소로 가야 고기가 잘 잡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날 밤에도 그는 다른 날들과 같이 고기를 잡기 위해 고기가 가장 잘 잡히는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날 밤은 다른 날과 좀 달랐습니다. 고기가 잘 잡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금까지 써왔던 모든 방법과 기술을 다 동원해도 아침이 오기까지 한 마리의 고기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밤새도록 최선을 다했음에도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고기를 잡지 못한 것으로 인해 허탈하고 또 육신은 더욱 피곤에 지쳤을 것입니다. 긴 밤을 보내고 빈 그물을 가지고 육지로 돌아온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내일을 위해 그물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온통 고기를 잡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아오셨습니다. 그리곤 심신이 지체 있는 그에게 다시 배를 띄워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예수님의 이 제안을 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현재 무척 피곤하고 지쳐있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에 그대로 순종하여 말씀하신대로 더 깊은 곳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더 깊은 곳에 가서 다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절대로 물고기가 잡힐 수 없는 깊은 곳에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밤새워 한참을 수고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던 고기를 한 순간에 두 배에 가득 채우고도 남음이 있는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 날 밤의 실패를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면 이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까지 별 볼일 없는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어도 예수님을 만나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예수님의 만남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너무나 극적이지 않습니까! 사실 돌아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서 그다지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랍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좋은 말씀을 전하는 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고기를 많이 잡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까가 전부였습니다. 온통 머릿속이 세상일로 가득 채워져 다른 것은 생각도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친히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찾아오셔서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종종 예수를 믿는 분들에게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당당히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의지적 결단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스스로 의지적 결단으로 예수를 믿게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베드로의 경우처럼 주님이 먼저 찾아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무엇입니까? 보기에는 스스로의 결단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 같지만 실은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찾아 오셔서 만나주셨기에 믿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종교와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아십니까? 세상 종교는 하나같이 인간이 신을 찾아다닙니다. 자신에게 복줄 만한 신이 어디 있는가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반대입니다. 신이 인간을 찾습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우리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주님이 찾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이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그러한 사람들을 부르기도 하십니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어떤 분들은 전혀 예수를 믿지 않다가 중병에 걸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교회를 나왔다가 병을 치료 받고 예수를 잘 믿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분들은 잘 나가던 사업이 부도나거나 파산하여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니 하나님 붙잡고 교회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의 습성이란 것이 일이 맘먹은 대로 잘 되어 번창하고 형통할 때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을 잘 믿으려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정말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만나게 되면 그 때서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어려움이나 고통, 곤고함 그리고 실패가 그 순간에는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 게 됩니다. 고난이 축복이 되는 셈입니다.    

송명희 시인을 아십니까? 뇌성마비 장애를 가져 손으로 숟가락을 들기도 어려운 여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 시들을 발표해 큰 감동을 주고 있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이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은 의사가 태아의 뇌를 집계로 잘못 건드려 소뇌가 손상되어 평생 뇌성마비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녀는 7살 때까지 꼼짝 못하고 누워 지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집도 너무 가난하여 분유살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17살 때에 가서야 비로소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처음 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 소망 없이 살아가던 그녀에게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곤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그 일 이후 그녀의 인생은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녀에게 시를 쓰는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녀의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고 곡에 붙여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정상인보다도 더욱 바쁘게 활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기를 만나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간증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으로 유명한 이지선 양을 아십니까? 그녀는 이화여대 4학년 재학 중이던 지난 2000년 7월 30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귀가하다가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음주 운전자에 의한 6중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 의사들은 동행한 오빠에게 그녀가 살 가망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들마저도 치료를 포기할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7개월간의 입원과 11차례의 수술, 끔찍한 물리치료 끝에 이지선양은 기적적으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대신 곱던 얼굴은 화상 흉터로 일그러졌습니다. 얼굴이 망가지는 것이 죽음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꿈 많던 20대의 아가씨는 3년 뒤에 책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고 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그녀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이기고 이렇게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아무리 힘들 때에도 여기가 끝이 아니란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와 참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책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을 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 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게 세심한 계획아래 만드셨는지 온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백만분의 일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얼굴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그 기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아니였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까요. ..... 사람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 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런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도저히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면 희망이 생깁니다. 아무 힘이 없는 사람이 힘이 생깁니다. 능력이 생깁니다. 슬픔으로 가득 찬 삶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실패한 인생이 변하여 성공한 인생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어떤 일로 인하여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낙심되는 일이 있습니까? 한치 앞도 알 수없는 삶으로 인하여 염려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먹은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불안함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늘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어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주시는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럴 때 우리 인생이 베드로처럼 새롭게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희대의 탈옥수로 유명한 신창원이 암으로 투병중인 이해인 수녀에게 옥중에서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그는 이해인 수녀에게 보내는 편지의 서두에서 이해인 수녀와의 특별하고 소중한 만남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새장 같은 공간, 그리고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 나약한 의지를 어찌할 수 없는 장벽 앞에서 절망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바삐 날아온 사랑이 있었습니다’ 절망가운데 아무런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을 때 이해인 수녀를 만나 진정한 사랑과 소망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혹시 이렇지는 않습니까? 새장 같은 공간에서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과 나약한 의지로 인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바삐 날아온 사랑처럼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바로 그 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랑과 소망의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사랑과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만남으로 하늘로부터 임하는 모든 축복들을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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