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명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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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창17:23-18:15)
이목사01-31 19:18 | HIT :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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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그리고 사라의 나이가 89세가 되는 때에 드디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찾아오셨다. 주신 약속의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리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에 더하여 그 아들의 이름도 미리 지어 주셨다. 이삭이죠! 왜 이렇게 까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일까? ‘확신’을 주기 위해서다. 비록 사라의 나이가 89세 지만 반드시 약속한 대로 이루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곤 집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할례’의 의미가 뭔지 아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다. 언약의 증표가 할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약속의 수혜자가 되려면 할례를 꼭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시고 아브라함을 떠나 올라가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이 약속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그 후 어떻게 했을까?  23절을 보자.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날에 그 아들 이스 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한 일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즉시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한 것이다.

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즉각적으로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한 것이 대단히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순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 심이 있다고 다 순종하는가? 교회 열심히 나와 예배 열심히 드리고 기도 많이 한다고 다 순종하는가? 그러지 못할 때가 많지 않는가! 결국 순종의 본질은 이런 형식적인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순종은 신뢰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절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씀을 따라 즉각적으로 순종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지 못할까? 우리가 처한 곤란 한 환경이나 상황 때문일까? 아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 다 핑계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 말씀 중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러셨는데 이 말씀이 바로 ‘나를 신뢰하라’는 말씀이다. 주님이 '나를 믿으라'고 '나를 신뢰하라'고 말씀하신다. 말씀대로 주님을 언제나 신뢰하자.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지 주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흔들림 없이 주님을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때 순종이 자연스러운 삶이 될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다. 그런데 이번 방문은 이전과 좀 다르다. 전에는 주로 말씀이나 환상 중에 나타나셨는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모습 으로 오셨다. 1-2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 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마므레’는 헤브론 근처에 상수리나무가 많이 있던 곳으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주로 생활한 곳이다.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뜨거운 낮 시간, 더위를 피해 장막에서 쉬고 있을 때, 장막 맞은편에 ‘사람 셋’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즉시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을 따뜻하게 영접했다.

이 ‘세 사람’ 누굴까? 그냥 지나가는 진짜 나그네들일까? 아니다. 본문의 전후 문맥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 사람’이 한 분은 ‘하나님’이고 두 분은 ‘천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그들이 이런 분들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히13:2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들을 단순한 나그네 로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나그네를 대하는 아브라함의 태도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보이는 이들 세 사람을 모른 채 하거나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비록 지나가는 나그네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이들을 영접하고 대접했다. 우리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서 그가 늘 손님 대접하는 일에 힘썼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이 그들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살펴보자. 6-8절 말씀을 보자.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 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자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우선 물로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한 후 시원한 나무 아래에서 쉬기를 권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좋은 음식, 여기 보면 떡, 송아지 요리 그리고 엉긴 젖(버터)과 우유를 정성껏 준비한다.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에 음식을 차려 그들이 편히 쉬며 식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옆에 마치 종이 시중들 듯 서 있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예우로 나그네들을 대접한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브라함은 참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브라함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그들은 도움을 받는 처지 아닌가! 얼마든지 거만하게  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브라함은 오히려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나그네인 그들을 ‘내 주여’라고 부르며 선대했다. 겸손하게 나그네를 대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지 않는가?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모습이다. 주님은 이 모습을 통해 우리가 겸손하게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게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먼저 겸손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약4:6절을 보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보라. 하나님은 교만 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하지 않는가! '물리친다'는 것은 치워버리다,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그만큼이나 교만한 자를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겸손해야 보다 더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또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하지 않는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 은혜 아닌가!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그 은혜를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바라시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기 원하시는가? 그렇다면 가장 필요한 것이 겸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주님 앞에서 겸손, 또 겸손하기를 바란다.

또한 겸손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는데도 필요하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줘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 받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필수적인데, 겸손은 정말 좋은 수단이 된다. 사람은 다 똑같다. 겸손한 사람 좋아하고 그런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 교만하면 절대로 사람이 붙을 수가 없다. 결국 우리가 세상에서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늘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빌2:3-4절 말씀처럼 하면 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 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 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면 된다. 이 말씀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는 의미다. 겸손한 마음은 사람을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이다. 성경은 한 영혼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라고 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는다.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잘 섬겨 더 많은 영혼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보자. 세 사람이 식사를 마쳤다. 그 후에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이들이 누구고, 이들이 아브라함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9절을 보자.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 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여기를 보면 이들은 아브라함의 아내 이름을 정확히 말한다. 사실 사라의 이름이 ‘사래’에서 ‘사라’로 바뀐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바꾸라 해서 바꿨다. 그래서 바뀐 이름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때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정확하게 이름을 부른다. 결국 이들 중에 한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이곳을 방문한 목적이 사라에게 직접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어떤 메시지인가? 10절이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 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하나님께서 내년 이맘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사실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하셨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시 직접 사라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사라에게도 확신을 주기 위함이다.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그 일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말씀인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사라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12절이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사라는 속으로 웃었다. ‘우리 부부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웃은 것이다. 처음 아브라함이 같은 말을 들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사라 또한 하나님을 믿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믿지 못한 것이다. 믿음은 믿음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솔직히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 ‘하나님’은 믿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믿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의 모습 아닌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능력’도 믿기 바란다.

사라의 생각을 아신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3-14절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 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 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정말 우리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는 분이시다. 사라가 속으로 웃은 것까지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다. 정말 전지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라의 믿음 없는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 말씀은 원어로 풀이해보면, ‘여호와께 어떤 일이 어려운 일이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라도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일도 어려운 일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능력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간구하며 나가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여호와 하나 님께 능하지 못한 일이 없는 줄로 믿고 더 강한 믿음으로 살기 바란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시며,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연약한 믿음에 확신을 주는 분이시며, 마침내 약속한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기 바란다. 아브라함이나 사라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함으로 웃는 자 되지 말기 바란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 을 신뢰함으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알고 더욱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Notice  [공지] 성경 66권 강해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jejums 1755
 * 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창17:23-18:15)    이목사 73
132  * 불가능을 꿈꾸자 (창17:15-22)    이목사 80
131  * 선택받은 것이 사명이다 (창17:9-14)    이목사 105
130  * 축복은 계속된다 (창17:1-8)    이목사 130
129  * 사랑에 차별은 없다 (창16:6-16)    이목사 111
128  * 신뢰가 먼저다 (창16:1-6)    이목사 120
127  * 헛된 기다림은 없다 (창15:6-21)    이목사 126
126  * 두려움은 믿음으로만 이긴다 (창15:1-7)    이목사 107
125  * 형통은 하나님만이 주신다 (창14:17-24)    이목사 106
124  * 계산하지 않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창14:1-16)    이목사 117
123  * 믿음이 인생을 결정한다 (창13:10-18)    이목사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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