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명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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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능을 꿈꾸자 (창17:15-22)
이목사01-27 23:38 | HIT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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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아 우르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75세에 부르셨다. 부르신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며 가나안 땅으로 그를 인도하여 그곳에서 살게 하셨다. 그리고 이제 그 축복의 약속을 이룰 때가 되어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하나님이 직접 그를 찾아오신다. 약속을 주신지 몇 년 만인가? 24년 만이다. 24년이라는 시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이 24년이란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아마도 힘들고 고단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 와서 타향살이하는 삶이 편할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있어 이 24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의미 없이 흘러가는 그런 시간이었을까? 아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을 준비시키는 기간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특별히 쓰임 받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준비시키는 기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13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했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 40년이라는 준비기간이 필요했으며,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13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그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믿는 우리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시키신다. 그러므로 내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나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 하시고 혹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오직 믿음으로 잘 이겨나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셨을까? 먼저 하나님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전능하다’는 것은 ‘못하시는 것이 없다’는 말씀이다. 정말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없으신 분이라고 믿는가? 그렇다면 그 믿음대로 살기 바란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조금 어려운 일만 만나면 습관적으로 ‘힘들다’, ‘어렵다’, ‘할 수 없다’라고 부정적인 말만 하면 되겠는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왜 안 되겠는가? 함께 하시면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에게 ‘네 가지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시고, 자손이 번성할 것과 자손들에게도 동일한 복이 임할 것과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땅을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그런 후에 이 약속의 말씀 을 자손들과 더불어 대대로 잘 지키라 당부하시며 언약 백성의 증표인 ‘할례’를 모든 백성의 남자들에게 행하라 명령하셨다.

이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주신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 고 사라라 하라” 하나님은 아브라함만 축복하신 것이 아니다. 아내인 사라도 축복하신다. 먼저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꿔주신 것처럼 사래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바꿔주신다.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열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함께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 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즘엔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 우리나라 ‘남존여비사상’이 얼마나 심했는가! 여자는 남자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 여겨서 사회 활동에 참으로 많은 제약이 있지 않았는가! 이런 유교적 전통이 언제부터 깨진지 아는가? 구한말 선 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와 복음이 전파되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선교사들은 배움의 기회가 없던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이 악습에서 우리와 이 땅을 변화시킨 것이다. 차별하지 말기 바란다. 남자와 여자뿐만이 아니다. 외국인도 그리고 직업이나 학력, 빈부격차를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말기 바란다. 모든 사람은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존재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가장 귀한 걸작품들이라는 것을 아시고 한사람 한사람들을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차별없이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16절이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 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이건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다. 지금 사라의 나이가 몇 살인가?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니 사라의 나이는 89세다. 89세 라는 나이는 신체적으로 놓고 볼 때 이미 출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그런데 그런 사라를 향해서 그녀가 아이 아니 더 구체적으로 아들을 낳게 될거라 말씀하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는가? ‘정말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어야 될 줄로 믿는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이다. 저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아멘’한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17-18절을 보자.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말씀을 하시자 아브라함은 엎드린 상태에서 웃는다. 이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드디어 아들을 주시는구나’ 생각하여 기쁘고 즐거워서 웃는 웃음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왜냐 하면 마음속으로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 요’ 이렇게 생각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씀으로 들려서 웃은 것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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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부분에서 24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아브라함의 현재의 믿음은 정말 진실하고 온전한 믿음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아직도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실지로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전혀 믿음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히 믿음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믿음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더 의지하는 ‘인간적인 믿음’이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인간적인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이나 자기의 경험 그리고 자기 이해의 범위 안에서 하나 님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가 생각할 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웃은 이유를 알겠는가?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89세인 사라가 아들을 낳는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고 느껴서 웃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가? 현재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정말 인간적인 생각과 이해를 초월해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 면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처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믿는, 인간적인 믿음 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과 우리의 삶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믿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능력과 기적에 있다.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는 아무런 ‘능력’이나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다. 겉으로야 믿음 좋은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믿음은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기만 하는 장식품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이 아니다. 믿음에는 정말 큰 능력이 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루게 하는 힘이 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있고 나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능력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마음이 위축되지 않고 더욱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이 떠나신다는 소리를 듣고 염려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주님이 하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 인간적인 믿음이 아닌 진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참된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이런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을 향해서 하나님은 다시금 말씀을 주신다. 19절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 리라” 하나님은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아브라함의 연약한 믿음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보다 더 확실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 다시 한번 강력히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아, 사라가 인간적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태이지만 나는 네 아내에게 아들을 줄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면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이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는가? 안 이루어졌는가? 이루어졌다. 결국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인 믿음이 얼마나 신뢰하지 못할 믿음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적인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이해 의 범위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에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이해의 범위를 뛰어 넘어서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믿기 바란다. 제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기 바란다. 기도할 때 제한을 두지 말기 바란다. 막9:23절 말씀을 마음에 세기기를 바란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은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때가 많은 연약한 우리들이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따라하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12:2절 말씀이 해답이다. 방법은 날마다 날마다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24시간 주님만 바라보면 된다.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으로 날마다 날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길을 걸어도, 밥을 먹어도, 누구와 대화를 해도, 잠을 자도 늘 주님만 생각하면 된다.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이 되는지 아는가? 바둑 배워보았는가? 처음에 배울 때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재밌는가? 그러면 누워서도 바둑생각 나지 않는가! 이렇게 날마다 생각이 나면 실력이 느는 것이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늘 생각해야 믿음이 굳세어지는 것이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날마다, 늘, 24시간 예수님만 생각하며 살기 바란다. 그렇게 해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Notice  [공지] 성경 66권 강해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jejums 1755
133  * 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창17:23-18:15)    이목사 73
 * 불가능을 꿈꾸자 (창17:15-22)    이목사 79
131  * 선택받은 것이 사명이다 (창17:9-14)    이목사 105
130  * 축복은 계속된다 (창17:1-8)    이목사 130
129  * 사랑에 차별은 없다 (창16:6-16)    이목사 111
128  * 신뢰가 먼저다 (창16:1-6)    이목사 119
127  * 헛된 기다림은 없다 (창15:6-21)    이목사 126
126  * 두려움은 믿음으로만 이긴다 (창15:1-7)    이목사 107
125  * 형통은 하나님만이 주신다 (창14:17-24)    이목사 105
124  * 계산하지 않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창14:1-16)    이목사 117
123  * 믿음이 인생을 결정한다 (창13:10-18)    이목사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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