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명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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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차별은 없다 (창16:6-16)
이목사11-25 16:24 | HIT :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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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기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서 후사를 얻고자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아닐까?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 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후사 주실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 게 하지 못했다.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자기들이 생각할 때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되는 대로 행했다. 결국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잘못된 결정 으로 인해 아브라함, 사라 그리고 하갈까지 모두가 다 고통을 받게 되었다. 거기다 오늘 본문에 나오지만 하갈은 사라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임신한 몸으로 집을 뛰쳐나가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이 생각할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판단해서 행한 일인데 모든 것이 다 꼬여 버리고 말았다. 아브라함의 가정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들이 끝까지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응답이 없다고, 힘들 것 같고 어려울 것 같다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저버리고 자기들이 생각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니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도 살다보면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경우처럼 환경이나 상황이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살지 못하도록 흔들어 놓을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에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 흔들림 없이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때 마침내 하나님이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믿음을 견고히 하시기 바란다.

본문을 다시 보자. 오늘 본문은 사라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하갈이 집을 뛰쳐나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집을 뛰쳐나온 하갈, 어디로 향했을까? 하갈이 갈만한 곳이 어디 겠는가? 고향이죠. 하갈은 애굽 여인이었다는 것을 볼 때 애굽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곳으로 내려가다가 하갈은 잠시 광야의 한 샘에 멈춰 선다. 잠시 숨을 돌리고, 목을 축이기 위해서 멈춰 섰을 것이다. 여러분 상상해 보라! 집에서 뛰쳐나온 후 홀로 샘 곁에 처량하게 앉아 있는 하갈의 모습이 어땠을까? 하갈의 마음이 어땠을까? 보나마나 죠. 정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로 인해 마음이 아주 많이 상해 있었을 것이다.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탄식하며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하갈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기의 주인인 아브라함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를 만나기 위해서 찾아와 주신 것이다. 7-8절을 보자.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오신 것이다. 지금 하나님이 하갈을 찾아와 그녀를 부른다. 뭐라고 부르는가 보라! ‘사래의 여종 하갈아’라 하신다. 전에 하나님이 하갈에게 나타나신 적이 있는가? 없다. 하나님과 교제한 적이 있는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광야의 한 샘가에서 실의에 빠져있는 이 불쌍한 여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계신다. 이름은 ‘하갈’이고 신분은 ‘사라의 여종’이었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거기다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자초지종까지 다 알고 계신다. 무슨 애긴가? 하나님은 이 이방 여인 하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참 의아하지 않는가!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들 만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하나님의 백성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 라엘 백성들에게만 있을 것 같은데, 오늘 말씀을 보면 놀랍게도 이방인이었던 그것도 몸종에 불과한 아주 보잘 것 없는 여인에 대해 이렇게나 자세히 알고 계시고 찾아와 주시기까지 하시다니요. 우리는 하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이고 그 외 이방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당연히 우리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나에 대해서도 다 알고 계신다. 나의 이름을 아신다. 나의 지나온 삶을 아신다. 나의 처한 환경을 아신다. 심지어 나의 마음까지도 아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깨달은 하갈은 그래서 하나님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13절을 보라!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 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여기서 ‘살핀다’는 말의 뜻은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여 조사하고 추적한다’는 의미다. 결국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면 우리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시며 세밀하게 보살펴 주시는 분인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주목하여 보고 계신다. 살피고 계신다. 그러기에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다 아시는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의 마음까지 다 헤아리시는 것이다.    

지난 수요저녁예배 시간에 함께 은혜를 나누었던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박상원 선교사님을 보라. 처음에 남편 따라 아무런 준비 없이 아프리카에 들어가 사역한다고 온갖 괴로 움을 겪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나? 하갈에게 찾아와 주신 것처럼 선교사님에게 찾아와 주시지 않았는가! 그러고 나서 힘들고 고된 선교 사역도 잘 감당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다. 우리 주님은 내가 고통과 슬픔의 샘가에 앉아 통곡 하고 있을 때 그런 나를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않는다. 그런 나를 반드시 찾아와 주신다. 잊지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생에서 문제와 고난을 만났을 때 반드시 찾아와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시121:4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나를 주목하여 살피시고 계시 다는 것을 기억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자 이제 하갈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하갈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는가를 보자. 9절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하나님 은 하갈에게 ‘지금 다시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복종하라’ 하신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말씀이 하갈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말씀으로 들렸을 것이다. 정말 죽으면 죽었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그곳 아닌가! 그곳은 ‘고통 받는 자리’요, ‘멸 시 받는 자리’요, ‘대접받지 못하는 자리’인데 어떻게 그런 곳으로 가라 하시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하갈에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라 하시는 것일까? 놀랄만한 이유 가 있다. 바로 하갈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다. 10절을 보자.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 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그리고 11절 에서 그 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 11절 보자.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 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하나님이 하갈에게 고통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라  하신 것은 하갈의 고통을 모르거나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시간을 복으로 보상해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하갈과 같은 인생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가 있다. 앞길이 막막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러워 지나온 세월이 서럽고 억울할 때가 있다. 이 때 기억해야 할 것이 ‘보상하시는 하나님’이다. 만약 우리의 삶에 찾아온 고난과 고통이 떠나가기를 부르짖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과 고통을 통해 더 큰 복을 주시려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인내하며 그 시련의 시간을 잘 통과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가득 담아 보상해 주실 것이다. 요셉의 삶의 모습이 그것을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시며 세밀하게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힘겨운 삶의 언저리에서 복을 가득 담아 보상해 주시는 분이시다. 하갈을 기억하시고 복된 자리로 인도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우리와 함께해 주실 것이다. 좋으신 하나님과 더불어 복된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Notice  [공지] 성경 66권 강해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jejums 1755
133  * 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창17:23-18:15)    이목사 74
132  * 불가능을 꿈꾸자 (창17:15-22)    이목사 80
131  * 선택받은 것이 사명이다 (창17:9-14)    이목사 105
130  * 축복은 계속된다 (창17:1-8)    이목사 130
 * 사랑에 차별은 없다 (창16:6-16)    이목사 111
128  * 신뢰가 먼저다 (창16:1-6)    이목사 120
127  * 헛된 기다림은 없다 (창15:6-21)    이목사 126
126  * 두려움은 믿음으로만 이긴다 (창15:1-7)    이목사 107
125  * 형통은 하나님만이 주신다 (창14:17-24)    이목사 106
124  * 계산하지 않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창14:1-16)    이목사 117
123  * 믿음이 인생을 결정한다 (창13:10-18)    이목사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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