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명성교회
Untitled Document
Untitled Document



* 신뢰가 먼저다 (창16:1-6)
이목사11-16 11:32 | HIT : 119

UPLOAD 1 ::36.jpg (31.8 KB) | DOWN : 6


하나님은 메소포타미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두려움 가운데 있던 아브라함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큰 상급이다’는 말씀으로 ‘믿음’과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나서 현재 후사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는 말씀도 주셨다. 그리곤 바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하늘의 셀 수 없이 많은 별을 보여 주며 ‘네 자손이 이 별들처럼 많아지리라’ 그리고 ‘이 땅도 네게 주겠다’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약속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 당시 계약할 때 하는 방식대로 ‘언약’을 맺어 주셨다. 이것이 ‘횃불언약’이다.

천지를 만드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 사람인 아브라함과 대등한 위치에서 언약을 맺으셨다. 놀라운 일이다. 아니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이렇게 해서라도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고. 또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일은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브라함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으니 그 약속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리면 된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아브라함이 유일하게 할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정말 하나님 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잘 기다렸을까? 본문을 보자.

1-2절을 보자.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 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 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된다’는 후사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 과 사라 사이에서 난 자가 상속자가 된다’는 말씀이다. 자 이 약속의 말씀을 있는 그대 로 믿는다면 그날이 언제든지 기다려야 되겠죠! 그런데 어떤가? 본문을 보면 지금 사라 가 아브라함에게 자기가 출산하지 못하니 자기의 여종을 통해서 후사를 얻자고 제안한다  지금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라가 이런 제 안을 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그만한 이유가 있기는 하다.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가 85세이고 사라의 나이가 75세인데 이 정도의 나이에 후사를 갖는다는 것 분명 어려운 일이 기 때문이다. 결국 사라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래 내가 이 나이에 육체적으로 아이 를 갖는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니 차라리 내 몸종인 하갈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갖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일일 거야’ 그러면서 자신이 임신하지 못한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며 여종을 통해서 자식을 얻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정당화한다.

사라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다. 이건 잘못 돼도 아주 크게 잘못된 태도다. 왜냐하면 보라! 하나님은 지금 현 상황에 대해 아브라함이나 사라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사라는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을 확정해 버린다. ‘하나님이 나에게 임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끝났다고 단정하면 되겠는가? 안 된다. 마음대로 단정하지 말기 바란다. 사실 우리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 중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렇다. 무슨 일이든지 내 눈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고, 잘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미리 단정하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해야 끝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캄캄한 어둠 가운데서도 진행된다. 그러므로 혹시 지금 어두운 현실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시다면 지금은 어둡지만 새벽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 바란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말기 바란다. 믿음을 포기 하지 않는 자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이며, 상상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선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생애에 일어 날 것이다. 믿으시기 바란다.

자 그렇다면 사라의 믿음 없는 상태에서 말한 이 제안에 대해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 했을까? 아브라함은 별다른 고민 없이 사라의 제안에 동의했다. 사실 이 당시 풍습에 의하면 아내가 자식을 낳지 못할 때 몸종을 통해서 자식을 낳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기에 사라나 아브라함의 행동이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다 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 얘기고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 아닌가!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후사에 대한 약속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사라의 제안을 거절했어야 맞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제안까지 하는 아내를 이해하고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여보, 당신이 오죽하면 그런 말을 하겠소. 하지만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 하나님의 약속을 믿 고 조금 더 기다립시다.’ 이렇게 임신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 사라를 위로하고 격려 하고 용기를 주었어야 마땅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라의 인간적인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녀의 제안을 선 듯 수락하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결국 지금 사라도 실수 하고 아브라함도 실수하고 만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신앙의 연륜과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아니 왜 우리는 이렇게 늘 실수하며 사는 것일까? 성경에서 그 이유 를 찾자면 롬3:10절 말씀이 그 대답이 될 수 있다. 롬3:10절에서는 ‘이 세상에 의인은 없다’고 가르친다. 이 말은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본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수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를 아시겠는가? 그래서 그런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부족한 것 투성이고 실수투성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바로 설 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수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용납해 주시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서 관용할 수 있어야 될 줄로 믿는다. 혹시 가까운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용서하기 바란다. 남편이 실수하더라도 용서하기 바란다.  아내가 실수하더라도 용서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도 용서받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실수를 용납하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감싸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모든 사람들을 그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납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브라함은 이제 사라의 제안을 따라 여종인 하갈과 동침한다. 4-5절을 보라!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 지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너의 여 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 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결국 아브라함은 하갈과 동침했고 쉽게 임신을 했다. 사라가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임신이 하갈에게는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난다. 임신한 것을 안 하갈이 변한다. 임신했다는 사실 때문에 여주인인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멸시 했다’는 것은 ‘여주인 행세를 했다’는 말이다. 자신의 몸종이었던 사람이 자기를 멸시하고 주인 행세를 하려 할 때 사라의 심정이 어땠을까? 아마 분하고 원통하고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은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것, 이게 다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한 결과로 지금 이런 고통 을 겪고 있는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사라는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남편인 아브라함에게 토로하게 되고 그 얘기를 들은 아브라함은 사라의 얘기를 무시할 수 없어 하갈을 다시 사라에게 내어주자 사라가 앙갚음으로 하갈을 학대하자 하갈이 학대에 못 이겨 도망치는 일까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참 가정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어쩌다가 아브라함의 가정이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기를 낳지 못하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기 보다는 인간적인 방법 즉 몸종을 통해서 후사를 얻고자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어떤가? 이러한 것이 아브라함과 사라만의 문제로만 보이는가? 아니다. 상황만 다르지 우리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얼마든지 이런 문제를 만날 수 있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 문제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 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 문제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 해야겠다는 선한 뜻을 품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믿는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믿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서 쉽게 갈 것인가’라는 이 둘의 싸움의 연속일 줄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분들 더디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오직 믿음의 길 로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 믿음의 길로 나아갈 때 성령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믿음 으로 행하시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Notice  [공지] 성경 66권 강해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jejums 1755
133  * 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창17:23-18:15)    이목사 73
132  * 불가능을 꿈꾸자 (창17:15-22)    이목사 80
131  * 선택받은 것이 사명이다 (창17:9-14)    이목사 105
130  * 축복은 계속된다 (창17:1-8)    이목사 130
129  * 사랑에 차별은 없다 (창16:6-16)    이목사 111
 * 신뢰가 먼저다 (창16:1-6)    이목사 119
127  * 헛된 기다림은 없다 (창15:6-21)    이목사 126
126  * 두려움은 믿음으로만 이긴다 (창15:1-7)    이목사 107
125  * 형통은 하나님만이 주신다 (창14:17-24)    이목사 105
124  * 계산하지 않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창14:1-16)    이목사 117
123  * 믿음이 인생을 결정한다 (창13:10-18)    이목사 125

     1 [2][3][4][5][6][7][8][9][10]..[12]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


Untitled Document
Copyright 2006 JEJUMS.NET All Rights Reserved | 제주시 한천로 36 | 064-747-3291 + 약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