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명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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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하지 않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창14:1-16)
이목사09-20 21:59 | HIT :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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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서로 소유가 풍부함으로 함께 살 수 없게 되자 롯은 아브라함의 양보 하에 물이 넉넉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요단 지역을 선택하여 그곳으로 떠났다. 그 후 아브라함도 거처를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롯은 롯대로 요단 지역에 있는 소돔지역에서, 아브라함은 아브라함대로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각자 평안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브라함과 롯이 살고 있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난다. 1-3절이다.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시날, 엘라살, 엘람, 고임의 ‘메소포타미아 연합군’과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의 ‘가나안 연합군’이 싯딤 골짜기 지금으로 말하면 염해 곧 사해에서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전쟁의 원인에 대한 힌트가 4절에 나온다. “이들이 십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12년 동안 가나안 다섯 부족들이 메소포타미아의 그돌라오멜 왕을 섬기며 조공을 바쳐왔는데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자기들의 힘과 세력이 강해졌겠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해오던 조공 바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이에 그돌라오멜 왕을 중심한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이 이를 응징하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 전쟁, 어디서 많이 보던 전쟁의 양상 아닌가!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의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된 전쟁 아닌가! 그렇다. 지금도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전쟁이 없었던 시대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역사를 보면 전쟁 정말 수도 없이 많이 겪었다. 특히 우리에게 가장 큰 고통과 상처로 남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 그리고 피해를 주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고통과 상처 그리고 피해를 주는 전쟁, 사라져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이유가 있다. 바로  전쟁의 뿌리가 ‘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죄의 깊은 곳에는 인간의 탐욕과 욕심이 있다. 다른 사람 것을 빼앗고 또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비참한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만 그러겠는가!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다 죄로 인해 생겨난다. 세상이 혼란한 것도 죄 때문이요, 따져보면 코로나가 발생한 것도 인간의 탐욕으로 대표되는 죄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죄로 인해 발생하는 이런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이 세상에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만이 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혼란한 이 세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은 우리 주님이시다. 이 땅에 진정한 평화는 우리 주님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또 그 평화를 주님은 우리를 통해 이루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문득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가 떠오른다.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 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이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바란다.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서,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그돌라오멜 왕이 이끄는 메소포타미아 연합군과 소돔 왕이 이끄는 가나안 연합군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10절을 보자.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 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지금 가나안 연합군의 군사들이 싯딤 골짜기 구덩이에 빠지고 나머지 군사들은 산으로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무슨 얘긴가?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이 승리했고 가나안 연합군이 패했다는 것이다. 결국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은 전쟁에 승리한 전리품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 그리고 사람들을 사로잡아갔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소돔에 살고 있던 롯도 포함되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름지고 풍요로운 곳을 찾아 이곳까지 왔는데, 이제 삶의 터전을 다 잃고 이렇게 처량한 포로 신세가 되어 타지 로 끌려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렇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 더 답답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을 통해 아브라함이 롯의 소식을 듣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는가? 14절을 보자.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 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아브라함은 롯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기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318명의 신복들을 데리고 즉시 쫓아갔다. 그리고 단까지 이르게 된다. 단은 가나안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아브라함이 지금 이 먼 곳까지 한걸음으로 따라왔다는 뜻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이 모습을 통해서 믿음을 가진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나 또 무엇인가를 행해야 하는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먼저 롯이 사로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반응을 보라!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기가 훈련시킨 318명의 가신들을 데리고 즉시 롯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처럼 행동할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사실 내 일 아니니 모른 체 할 수도 있고 방관할 수도 있다. 또 예의 상 말로는 걱정해 주고 염려해 주는 척하면서도 외면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사는 세상, 얼마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가!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 봉변을 당해도, 옆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나가도 자기에게 피해가 갈까봐 모른 체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우리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 가까운 사람들이 어떻게 하던가? 잘 나갈 때는 주변에 사람이 많았는데 어려워지니까 주변에 사람들이 다 나몰라 하지 않던가? 이것이 세상이고, 세상인심이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이 이렇다고 믿는 우리들도 그냥 그렇게 따라 살아야 할까? 아니다. 롬12:15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어야 한다’라고 하지 않는가! 기쁨도 함께하고 슬픔도 함께하라 하지 않는가! 맞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아브라함이 그랬다. 롯이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의 얘기로 듣지 않았다. 내 일로 여겨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롯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것이다. 이것이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어 주는 모습인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려움 당한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보상을 바라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삶의 모습인 줄 믿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을 쫓아갔다했는데, 사실 이건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다. 보라.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이 얼마나 강한 군대인가! 가나안 연합군이 그들에게 패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고작 318명의 가신만을 보유한 아브라함이 어떻게 그 강한 연합군 가운데서 롯을 구해 낸다는 것인가? 아마 보통사람 같았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롯이 붙잡혀 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롯을 구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겪이니 어렵겠구나’ 이러며 롯 구하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됐겠는가? 본문에 나오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런 것을 계산하지 않았다. 현상적인 전력의 열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승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그 일을 추진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진정한 믿음은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왜?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상식으로 앞뒤를 모두 잰 후에 그러한 것에 기초해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확언하건데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이룰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는 없다. 신앙은 상식과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상식선에서 그리고 이성적으로를 따진다면 성경의 이야기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노아가 그 화창한 날에 산꼭대기에 배를 만드는 것이 상식적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나 요단강을 배가 아닌 맨발로 건너는 것이 상식적인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에서 100만의 사람들이 40년을 산다는 것이 상식적인가? 90세의 여성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상식적인가? 모든 질병을 고쳐주시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이성적인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면 하나님이 이루신다. 그러기에 설령 나에게 해가 될 것 같고, 내 힘으로 역부족일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모든 분들에게 이런 믿음의 모습이 있기를 바란다.  

자 아브라함의 어찌 보면 무모한 듯 보이는 롯 구출 작전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한다. 보라! 아브라함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전략을 짠다. 바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밤에 기습 작전을 펼친다. 결국 밤을 이용한 기습 작전은 성공하여 그 연합군들을 순식간에 파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몰아냈다. 16절을 보자.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결국 빼앗겼던 모든 재물과 조카 롯과 부녀들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다 데려왔다.

지금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졌다. 안 되는 일이 되었다. 아니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인가? ‘믿음’이다. 다른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상식과 이성은 이런 일을 이루지 못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과 그 믿음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이런 놀라운 일을 이룬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 있는 자를 도우신다. 이성이나 상식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사람을 도우신다. 믿음이 없는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겠는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한 것만 관심 있게 보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능력과 상식과 경험으로 일할 때는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신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신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신뢰하므로 계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든 분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많이 체험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Notice  [공지] 성경 66권 강해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jejums 1755
133  * 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창17:23-18:15)    이목사 73
132  * 불가능을 꿈꾸자 (창17:15-22)    이목사 79
131  * 선택받은 것이 사명이다 (창17:9-14)    이목사 105
130  * 축복은 계속된다 (창17:1-8)    이목사 130
129  * 사랑에 차별은 없다 (창16:6-16)    이목사 111
128  * 신뢰가 먼저다 (창16:1-6)    이목사 119
127  * 헛된 기다림은 없다 (창15:6-21)    이목사 126
126  * 두려움은 믿음으로만 이긴다 (창15:1-7)    이목사 107
125  * 형통은 하나님만이 주신다 (창14:17-24)    이목사 105
 * 계산하지 않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창14:1-16)    이목사 116
123  * 믿음이 인생을 결정한다 (창13:10-18)    이목사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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