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명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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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받은 것이 사명이다 (창17:9-14)
이목사12-26 17:35 | HIT :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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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주 말씀을 통해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은 후 13년 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셨던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나이 99세에 드디어 찾아오신 것을 보았다.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라 내가 내 언약대로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그런 후 아브람에게 그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킬 네 가지 축복의 말씀을 주신다. 첫 번째 말씀은 이름을 바꿔주시는데, ‘존귀한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이란 이름 대신 ‘많은 무리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신다. 한 가족의 아버지에서 온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실지로 아브람은 후에 모든 믿는 자들의 믿음의 조상이 된다.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은 그 당시 최고의 축복인 자손 번성에 대한 복을 약속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축복을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믿음을 가지면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는다. 세 번째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허락하신 복이 아브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자손들에게도 대대로 계승된다는 것이다. 축복은 계승된다. 계속된다. 내가 받은 축복이 우리 자손들에게 이어진다. 모쪼록 신앙생활 잘 하셔서 많은 복을 받고, 그 많은 복을 자손들에게 계승할 수 있기를 바란다. 네 번째 말씀은 지금 아브람이 거주하고 있는 땅을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주겠다 하신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기업’이 있다. 바로 천국이다. 언젠가 우리는 이 약속된 땅에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천국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믿음으로 살기 바란다.  

이런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언약)과 관련해 두 가지 말씀을 더 하신다. 오늘은 이 말씀을 보자. 첫 번째는 ‘당부의 말씀’이다. 9절이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이름을 보라! 이름이 ‘아브람’ 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꼈죠. 아브라함에게 이제 새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이름을 바꿔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신다. 첫째는 ‘자신과 맺은 언약을 잘 지키라’ 하시고, 둘째는 ‘후손들에게도 대대로 이 언약을 잘 지키게 하라’ 당부 하신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며 살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성경을 보면, 성경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축복의 비결’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잘 지켜 행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복을 받되 나만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손들까지 복을 받는다’합니다. 중요한 것이 뭔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그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며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축복의 비결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축복의 비결대로 말씀을 신뢰하여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솔직히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왜 그럴까?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현실적인 이유를 들자면,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이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살도록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당장 눈앞의 현실 앞에 서면 현실은 가깝게 느껴지는데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기 보다는 빠르다고 여겨지는 인간적인 생각을 더 의지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그랬다.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지만 그도 ‘나이’라는 현실의 장벽 즉 ‘85세의 나이에 또는 99세의 나이에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고민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더 앞세워 결국은 불신앙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의 문제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 안다. 알면서도 현실 앞에만 서면 하나님 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기억하라. 우리의 ‘현실’보다, 우리의 ‘현실의 문제’보다 더 크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기 바란다.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행하기 바란다. 만약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정말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믿는다면 아마도 우리의 삶에서 놀라운 기적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제한하면 제한하는 것 이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기 바란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전능 하신 분이시니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오늘도 믿음으로 살기 바란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명령의 말씀’이다. 10-11절이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 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남자들은 모두 다 할례를 받으라’ 하신다. 여러분 ‘할례’는 히브리어로 ‘물로트’로 ‘둥글게 자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남자 생식기의 끝 부분을 덮고 있는 표피를 인위적으로 잘라내는 수술 을 가리킨다. 이 의식은 아이가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행하는데,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표로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표가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이 할례 의식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자기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이 할례 의식을 행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언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었으니 아브라함만 할례를 받으면 될 것 같은데, 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이 의식을 행해야 하는 것일까? 이유가 있다. 바로 할례가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후손들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언약이다. 그 만큼 이 언약이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할례 의식을 통해서 그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을 때까지 매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몸에다 표를 남겨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후손들은 할례 의식을 통해서 받게 된 이 표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이 의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할례를 받는 것이  여전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의 증표가 되는 것일까?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이 전파된 신약 시대에는 이제 더 이상 육신의 할례가 의미가 없다. 할례 받아야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5:6절 에서 이렇게 말씀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무슨 말인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할례의 효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할례 받는 것이 무의미해졌다면 현재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의 증표’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 그리고 성령의 역사, 그리고 말씀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의 증표가 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할례를 대신하여 오늘날은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는 우리 ‘믿음’과 ‘구원’과 ‘성결’의 징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할례’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외적인 징표였다면, ‘세례’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요 생명의 근원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받는 외적 징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자체가 구원의 능력을 지녔거나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간혹 어떤 분들은 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새사람이 되었다.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구원자로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신 모든 축복들을 다 받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좋은 것들이 이제는 예수님으로부터 온다. 우리가 받게 되는 모든 축복들이 예수님으로 인한 것이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분명해 진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그 모든 축복들을 우리가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믿음’이다. 믿음뿐이다. 우리가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무슨 공로가 있어야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이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들을 축복하실 때 항상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셨던 것이다. 축복은 믿음으로부터 온다. 가지고 있는 믿음만큼 복을 받는다. 주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란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기 바란다.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기 바란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굳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기 바란다.  

할례와 관련해서 한 가지 말씀을 더 보겠다. 12절이다.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우리가 생각할 때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그의 후손들만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다. 보라! 할례는 아브라함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사람들까지 누구든지 남자라면 다 받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이방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문과 같은 이런 말씀을 받고도 자신들만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잘못된 특권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만 독점하려 한 것이다.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모든 민족, 모든 나라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것일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메시아가 태어나게 하시고, 그 메시아로 하여금 온 인류를 구원하는 역할을 감당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신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하나님이 자신들만 사랑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잘 되라고 은혜 주신 줄로 알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복된 삶을 살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만 잘 먹고 잘 살고 잘 되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먼저 이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은 아직까지 구원받지 못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또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풍족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셨을까?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뜻이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신 것일까? 은사로 섬기라는 뜻이다. 왜 하나님께서 남들이 가지지 못한 건강을 우리에게 주셨을까? 병 든 자를 도우라는 뜻이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식을 주셨을까? 지식 없는 사람을 도우라는 뜻이다. 이것이 먼저 우리를 선택하시고 복 주신 뜻인 것이다.

미국의 유명 여성 방송인인 ‘오프라 윈프리’가 쓴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에서 그녀는 ‘자기 인생의 네 가지 사명’을 이렇게 말했다. “첫째,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들보다 아픈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들보다 더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들보다 더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 받은 것,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모든 좋은 은사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들, 나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이 모든 것들 속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음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선택받았다는 것은 특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택함 받은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여 우리가 받은 것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는 많은 영광을 드리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 사랑을 힘입어 사랑 받은 바대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뜨거운 주님의 사랑을 잘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뜨거운 사랑으로 온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Notice  [공지] 성경 66권 강해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jejums 1738
133  * 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창17:23-18:15)    이목사 29
132  * 불가능을 꿈꾸자 (창17:15-22)    이목사 34
 * 선택받은 것이 사명이다 (창17:9-14)    이목사 67
130  * 축복은 계속된다 (창17:1-8)    이목사 91
129  * 사랑에 차별은 없다 (창16:6-16)    이목사 95
128  * 신뢰가 먼저다 (창16:1-6)    이목사 103
127  * 헛된 기다림은 없다 (창15:6-21)    이목사 110
126  * 두려움은 믿음으로만 이긴다 (창15:1-7)    이목사 90
125  * 형통은 하나님만이 주신다 (창14:17-24)    이목사 94
124  * 계산하지 않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창14:1-16)    이목사 101
123  * 믿음이 인생을 결정한다 (창13:10-18)    이목사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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