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명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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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은 계속된다 (창17:1-8)
이목사11-29 22:54 | HIT :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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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후 어느덧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간은 빨리도 흐른다. 아브람의 나이도 이제 99세가 되었다. 사래는 89세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이가 되도록 후사에 대한 약속과 관련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이런 때 아브람과 사래의 마음은 어땠을까? 여전히 약속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을까? 저는 거의 없었으리라 본다. 아니 어쩌면 약속을 잊고 있거나 아니면 체념하고 포기한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세월에 장사 없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잊지 말아야지 해도 기억이 흐릿해지고 잊게 되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다. 맞다. 사람은 잘 잊고 또 잘 포기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흘러가는 세월 중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 잊지 않으신다. 우리는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우리는 포기 할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아브람과의 약속을 잊으셨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하나님은 한시도 아브람을 잊으신 적이 없다. 또 아브람과 맺었던 약속을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여전히 시계를 보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정한 때가 되었다. 아브람의 나이 99세, 이스마엘을 낳은 지 13년 후에 체념 속에 있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신다. 보라!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정확히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2절을 보라.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 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라라 하시니” 지금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전능하다’는 것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왜 ‘나는 전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이유가 있다. 보라! 아브람의 나이가 지금 99세라고 했는데, 99세라는 나이는 신체적으로 놓고 볼 때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아마 누구라도 이 나이에 자식을 낳는다는 것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브람이라고 다르겠는가! 아브람도 자신의 신체적 상태를 잘 알기에 자신을 통해서 후사를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미리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과 그러기에 ‘전에 약속 했던 대로 분명히 너를 통해 후사를 주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가?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가? 이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 66권의 말씀이 다 믿어진다. 성경을 보라. 성경 66권 안에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보자면 성경은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책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황당무계한 책으로 보이는 이 책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이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믿지 못할 말씀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못하시는 것이 없으신 분임을 믿기 바란다. 내 삶도 또 삶에서 만나는 문제들도 얼마든지 변화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시고 그 믿음으로 살기 바란다.  

또 하나님은 이 말씀 후에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삶 전체를 흠이 없이 깨끗하게 하라’는 명령이다. 아무리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이라 할지라도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처럼 온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인간적인 노력을 통해서 환경을 바꾸고 또 무엇인가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신뢰하기로 결단하기를 바라신다.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께 드리기를 원하신다. 우리 자신을 흠이 없이 지켜 나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만을 신뢰하기를 바라신다. 그럴 때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될 것이다.    

이 말씀으로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은 이제 아주 중요한 네 가지 메시지를 아브람에게 주신다. 정말 중요한 메시지다. 기억할 것은 이 메시지는 아브람에게만 주시는 메시지가 아니라 영적 아브람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주시는 메시지라는 사실이다. 어떤 메시지를 주셨을까?  

첫 번째 메시지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라’ 하신다.  이름을 바꿔주신다. 4-5절이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시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름 바꾸는 것이 뭐 대단한 문제인가? 생각할 수 있다. 사정이 있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새로운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의 삶에 매우 중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으로서 한 사람의 전인격과 일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바꿨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바꿨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며 옛이름과 함께 ‘옛사람이 버려졌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가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이요, ‘성도’요, ‘믿음의 사람’이 요, ‘하늘에 속한 사람’이요, ‘축복의 사람’이라는 복되고 아름다운 이름들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를 이런 이름으로 부르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이름으로 부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살라고 그렇게 부르시는 것이다.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사람은 이름값을 해야 한다. 성도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이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예수님 안에서 새 인생을 사시기를 바란다.  

두 번째 메시지는 ‘너를 심히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다. 6절을 보자.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여기서 ‘번성하게 한다’는 것은 ‘결실케 한다’는 것으로 사람이나 동, 식물의 결실에 대해 사용 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손이 심히 번성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아브람이 살던 시대에 있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 뭔지 아는가? 바로 자손이 번성하는 것이다. 이 얘기는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장 큰 축복을 약속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다. 그것도 ‘최고의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믿는 자들에게 ‘번성의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번성의 복’, 어디서 유래됐는지 아는가? 창세기에서 시작되었다. 창세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복에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신다. 우리 모두에게 약속된 복이 ‘번영’과 ‘번성’의 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면 번영과 번성의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번영과 번성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란다.

세 번째 메시지는 ‘너에게 준 약속과 복이 네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까지  이어지리라’ 하신다. 7절이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이 아브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대대로 계승된 다는 것이다. 실지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이삭에게로, 이삭이 받은 복이 야곱에게로 전달되지 않았는가! 믿음만 전달된 것이 아니라 받았던 복도 전달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축복은 계승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믿음생활 잘해서 받는 축복이 자녀들에게 계승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어떤가? 자녀들에게 계승될 만한 받은 축복이 있는가? 자녀들이 기억할 만한 믿음의 유산이 있는가? 있기를 바란다. 자녀들이 언젠가 우리들을 생각하면서 자기들에게 남겨 준 그 믿음의 유산으로 인해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네 번째 메시지는 ‘네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신다. 8절을 보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지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지금 거주 하고 있는 땅 가나안 땅을 주겠다 하신다. 그리고 그의 후손에게도 동일한 복으로 땅의 복을 주겠다 하신다. 이렇게 해서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약속의 땅이 현재 이스라엘이 위치한 가나안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8절에 보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시는 데 사실 가나안 땅은 그들에게 영원한 기업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원한 기업’은 무엇을 의미할까? 다른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면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 즉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이 약속되었다. 언젠가 우리는 이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괴롭게 한다. 걱정과 근심으로 우울하게 한다. 탄식소리와 신음소리가 가득하다.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다. 이런 시대 소망이 사라진 듯 한 이 시대에 그럼에도 우리가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복을 부어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축복의 사람이다. 축복의 사람으로서 천국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하루하루도 믿음을 가지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Notice  [공지] 성경 66권 강해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jejums 1815
137  * 끝없는 사랑으로 산다 (창19:12-22)    이목사 10
136  * 하나님의 열심이 살린다 (창19:1-11)    이목사 35
135  *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 (창18:22-33)    이목사 29
134  *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자 (창18:16-21)    이목사 52
133  * 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창17:23-18:15)    이목사 194
132  * 불가능을 꿈꾸자 (창17:15-22)    이목사 173
131  * 선택받은 것이 사명이다 (창17:9-14)    이목사 215
 * 축복은 계속된다 (창17:1-8)    이목사 234
129  * 사랑에 차별은 없다 (창16:6-16)    이목사 163
128  * 신뢰가 먼저다 (창16:1-6)    이목사 171
127  * 헛된 기다림은 없다 (창15:6-21)    이목사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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