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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현재는 어떠한가 / 김동호
jejums02-20 20:11 | HI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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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엄청난 기적 중의 기적을 경험했다. 그런데 좀 놀라운 일이 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믿는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장에서 경험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 홍해에 길이 나는 것, 그 마른 길을 걸은 것, 애굽 군대가 수장당하는 것을 다 보았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랍고 놀라워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춤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했다. 온 백성이 함께 찬양하고 춤췄다. 그럴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 놀라운 기적을 몸소 체험하고 홍해를 건넌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물을 얻지 못하니 하나님을 원망한다. 물론 거긴 광야니까 당연히 물을 얻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하다가 겨우 ‘마라’라고 하는 곳에서 물을 얻었는데 너무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대번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한다.

홍해가 갈라진 일이 몇 년 전 일이라면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흘 전의 일인데 그새 홍해의 기적을 잊어버리고 물이 쓰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이해되는가? 홍해를 갈라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까짓 쓴 물 하나 달게 만들지 못할까? 그런 믿음이 없다는 게 이해가 되는가?

왜 그랬을까?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다. 은혜를 사흘 만에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사흘 전에 있었던 홍해의 기적을 잊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잊을 수 있을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해를 건너긴 건넜는데, 홍해를 앞두고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은 적이 없다. 모세만 그랬다. 그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만 했지 부르짖지는 않았다. 기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셨다. 당장은 좋아서 은혜를 찬송하고 춤도 췄던 사람들이지만, 그 은혜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부르짖지 않고, 간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아서 받은 은혜는 값싼 은혜가 된다. 오랫동안 우리의 삶에 남지 못한다. 그러면 고난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불신앙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다윗의 시편을 참 좋아한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하나의 패턴이 있다. 글에는 과거형의 문장도 있고, 현재형의 문장도 있고, 미래형의 문장도 있는데 다윗의 시편은 그게 모두 섞여져 나온다. 시편을 연구할 때 고난 시, 탄원 시, 찬양 시, 이런 식으로 유형을 나누는데 다윗의 시에는 ‘고난 시’가 많다. 사울을 피하여 다닐 때,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고 내려갈 때, 피난을 떠날 때, 사방이 꽉 막혀서 죽게 되었을 때 등 고난을 겪을 때 쓴 시다. 그런데 그 고난 속에 쓴 시가 ‘탄원 시’다. 그는 고난을 겪으면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린다. 그래서 다윗의 시는 ‘고난 시’인 동시에 ‘탄원 시’이다.

고난과 탄원은 시제로 얘기하면 현재에 당하는 일이니 현재 형이다. 그러다 문장의 시제가 과거형으로 바뀌며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다. 고난 중에서 탄원하다가 갑자기 현재의 고난을 뒤로 하고 과거의 고난을 기억한다. 그때도 하나님 앞에 탄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은혜로 그것에서 벗어났다. 그때 받았던 은혜를 기억해낸다. 그러면 믿음이 생긴다. ‘아, 그때도 살려주시고 구원해주셨으니 이번에도 살려주시고 구원해주시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긴다. 그러면 또다시 시제가 미래로 바뀐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어서 하나님 앞에 찬송할 날을 믿음으로 본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의 고난을 다 잊어버린다.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탄원하던 것, 간구하던 것을 잊어버린다. 다윗의 시는 고난 시, 탄원 시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은 찬양 시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찬양 시는 미래가 아니라 오늘 고난의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이래서 다윗의 시편이 기가 막힌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이다.

우리는 다윗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고난만 있었을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 많았을까?

은혜를 물에 새기면 기도하지 않게 된다. 공짜로 받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린다. 은혜를 잊어버리면 고난을 이길 힘을 얻지 못한다. 그건 믿음이 아니다. 은혜는 꼭 돌에 새기고 기억해야 한다.

돌아보면 받은 은혜가 많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넜지만 우리는 홍해를 못 건넜다. 그런 기적과 역사는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만만했나? 현재도 만만하지는 않지만, 과거의 삶도 넉넉하지 않았다. 나쁘면 더 나빴지 좋을 것이 뭐가 있었겠나. 그런데 다 건너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그것을 잊어버리니 오늘의 작은 고난도 이겨내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과 낙심과 좌절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닌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공짜로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해결해주실 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은혜와 축복과 천국을 쟁취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구하지 않아도 주시지만, 우리가 구하기를 원하신다. 왜? 그래야 은혜가 되기 때문이다. 은혜를 알아야만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면 현재 상황과 전혀 상관없이 다윗처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정말 근사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사탄이 기가 막혀서 졸도할 만큼 근사한 삶 말이다.

암 투병 중인 지금 어쩌면 나는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다시 기억하고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니까 이건 게임이 안 된다. 이것 가지고 불평하면 안 된다. 받은 복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런 복음을 주셨던 하나님이시니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 간구하면 이 고난도 유월절처럼 넘겨주실 줄을 믿는다.

당신의 현재는 어떠한가. 대개 우리는 고난의 삶을 산다. 만만한 삶이 어디 있을까. 고난 중에도 기도해서 축복을 받으면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평생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당하는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던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출처 : https://gp.godpeople.com/archives/111858?utm_source=d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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