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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그대는 혼자이겠지만 / 김일환
jejums07-09 21:47 | HIT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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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바울을 생각할 때 어떤 단어가 생각나나요? 사랑? 지식? 헌신? 십자가? 능력?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와 바울을 생각할 때마다 늘 한 가지 단어가 가장 선명하게 생각이 납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그들은 자유 안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혼자이기에 자유할 수 있었고, 자유 안에서 혼자일 수 있었습니다. 〈혼자〉라는 존재, 시간, 감각에서 〈자유〉를 마음껏 사용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의 위대함도, 선교의 담대함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자유에 가격을 매긴다면 얼마가 될까요? 이것은 마치 “공기는 얼마인가요?”, “바람은 얼마인가요?”, “태양은 얼마인가요?”를 묻는 것과 같은 질문입니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역사상 가장 존엄하고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세계관과 철학과 종교는 목청을 높이며 다투었습니다. 심지어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종점에 언제나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신앙과 자유가 함께 진리의 조화를 이룬다면, 그것은 정말 멋진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인 우리가 사용하는 자유는, 인간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혼자로서 추구해야 할 자유는 확실히 제한된, 규정된, 방향성 있는 성격의 자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 창세기 2장 15-17절

하나님은 홀로인 아담에게 자유를 주시지만, 분명 제한된, 규정된, 방향성 있는 자유를 주십니다. 동산의 모든 과일을 너의 자유로 먹어도 되지만, 안 되는 것도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쫌스럽나요? 하나님이 이상한가요?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자유라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있지만, 그것이 제한되지 않았을 때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커피’와도 같습니다. 커피는 여러 가지 효능이 있습니다. 굳이 제가 말하지 않더라도 그대는 커피의 효능을 아주 잘 알 것입니다. 그러나 이 커피를 하루에 10잔, 20잔, 30잔을 마시면 인간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몸에 독이 됩니다.

도로 위의 속도 제한 표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속도가 자유로운 고속도로에는 반드시 ‘제한속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왜 있겠습니까? 자동차를 구속하기 위함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고속도로는 분명 위대한 것이지만, 이 고속도로에서 속도의 제한이 없이 운행할 때, 반드시 인간이 다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위대한 진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위대한 것들은, 자유 없이 잉태된 것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삶, 위대한 삶, 행복한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자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제한된, 규정된, 방향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한된 자유〉란, 혼자로서의 삶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영역입니다. 우리는 자유라는 것을 이해할 때, 무제한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합니다. 무제한 잠, 무제한 놀이, 무제한 식사, 무제한 시간 등등입니다. 물론 이런 것에서 자유라는 것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자유라는 것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우리의 이미지는, 인간의 잠재되어 있는 욕구를 마음껏(?) 풀어놓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의 참된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은 한 가지를 일관되게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를 무제한적으로 풀어놓은 상태를, 자유로운 상태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욕의 노예〉라고 합니다. 혹은 〈우상숭배〉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제한된, 규정된, 방향성이 있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언제나 한 가지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을 향한, 〈인간의 본질적인 회복〉입니다.

구약에서 자유를 뜻하는 많은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호프쉬’와 ‘데로르’입니다. 호프쉬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지역에서 부과된 노역과 의무와 신분 등에서 자유롭게 된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또한 데로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그들의 해방된 상태의 자유를 말합니다.

이 두 단어는 〈자유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욕구의 방출이 아니라,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향한 첫걸음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고 싶었던 자유는, 그의 마음 가운데 어떤 의무나 속박이 없이, 자신의 존재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자유의 의미도 동일합니다. 〈죄에서 자유〉라는 말은, 마음껏 죄를 지으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유를 통해서 인간에게 무엇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 안에 있는 본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많은 영역에 ‘속박’되어 있는 인간의 마음과 구조적으로 ‘구속’되어 있는 인간의 제도에, 가장 인간다운 본질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인간에게 주고 싶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본질적인 자유를 깊게 고민하고 발견한 사람은 반드시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혼자입니까? 이제는 이 말을 바꾸어봅시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혼자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더욱 고민하고 발견할 수 있는 〈개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더욱 깊게 바라볼 수 있는 개인입니다. 그런 자유로운 개인, 그런 초연한 개인, 그런 소명적인 사람입니다.

이제 혼자 커피를 마셔봅시다. 여전히 그대는 혼자이겠지만, 이제는 가장 인간다운 본질을, 소명을 더욱 마셔봅시다. 그리고 나를 불러주신 그분 앞에 나의 자유를 사용합시다. 그대는 혼자라서 작은 존재가 아니라, 혼자라서 더욱 분명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 출처 :https://gp.godpeople.com/archives/105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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