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이 받을 복(1) / 2007년 2월 25일 주일낮예배
이목사02-28 16:20 | HIT : 1,654
2007년 2월 25일 주일낮예배

                                              하나님의 백성이 받을 복(1)
                                                        (신28:1-14절)

1. 서론
-새해를 맞이하여 성산 일출봉을 갔습니다. 성산 일출봉이 일출로 유명하다는 소리를 들어왔기에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른 새벽 약간의 먹을 것을 챙겨서 출발했는데 가는 길에 차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힘겹게 일출봉에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나 일출봉에 오르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높은 봉우리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 소망을 기원합니다. 즉 복을 비는 것입니다. 가정의 평안과 건강, 하는 사업 그리고 크게는 이 나라를 안녕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한결 같이 복 받기를 원합니다. 아마 복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전남 고창에는 모양성이란 옛 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매년 음력 정월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기 힘에 넘치는 돌을 머리에 이고 십리도 넘는 이 모양성 주위를 한 바퀴 돈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양성 주위를 한 바퀴 돌면 평안과 행복이 온다고 믿기에 그렇게 돈다고 합니다. 참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이 복 받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세상이 우리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바로 이럴 때 자신의 연약함을 통감하면서 사람들이 찾는 것이 신입니다. 신을 찾아 도움을 구합니다. 그래서 뭐 좀 영험하다는 소문만 나면 어떻게 들었는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들이 신을 찾는 것은 그 신을 통하여 복을 받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떨까요?    

-사실 이러한 면에 있어서는 우리 기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 또한 복을 추구합니다. 다만 우리 기독교가 세상 종교와 다른 점은 추구하는 복이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에 치우치기 보다는 영적이고 내세적인 복을 더 추구한다는 것이 아마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무시하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 부까지도 간구하라 하셨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물질적 복을 부어 주시고 계십니다. 다만 축복관에 있어 기독교는 세상 종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점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세상 종교는 그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신을 섬기는 편협한 축복관에 매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복을 주기만 한다면 그 신이 어떤 신이든지 의지하고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복을 받기 위해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 되심을 믿기에 아무 조건 없이 섬기는 것입니다. 복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복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은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그저 버려두지 않으시고 믿는 자들에게 영육간의 풍성한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이러한 풍성한 복은 그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볼 때 이러한 복을 누리려면 먼저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1절, 2절 말씀을 보십시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을 때 우리에게 임하는 복이 무엇일까요?
1) 첫째, 우리의 영혼이 평안하게 됩니다.  
  -사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평안함보다는 불안한 마음들이 더욱 우리 영혼을 뒤흔듭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과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의 문제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늘 쫒기듯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들을 다 얻었다 하는 사람들이라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두려움과 불안의 그림자는 자신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부자 세 사람에게도 근심은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재물을 불의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과 백약이 무효인 대머리 때문에 늘 근심했습니다. 또한 모건은 코가 크고 눈이 붉은 자기 용모 때문에 늘 근심했습니다. 또한 카네기는 장애인인 딸 때문에 근심했습니다.

  -유명한 나폴레옹 힐이라는 사람은 현대인에게는 7가지의 불안과 공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가난에 대한 불안, 둘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 셋째 질병에 대한 불안, 넷째 사랑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다섯째 노쇠에 대한 불안, 여섯째 자유 상실에 대한 두려움, 일곱째 죽음에 대한 공포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이나 불안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한 세상 속에서 마음의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참된 안식과 평안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우리 자신이 평안해지는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이것은 완전한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의 앞에서 우리를 실패와 절망 가운데로 몰아가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해 오는 모든 세력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물리쳐 주신다는 것이다. 한 길로 쳐들어 왔던 대적들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혼비백산하여 일곱 길로 도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가운데 거할 때, 맞게 되는 모든 어려움들을 친해 해결해주신다. 어떤가! 하나님이 이렇듯 직접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니 어찌 평안이 없을 수 있겠는가!

  -사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 속에 나타나는 평안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평안이 아니다. 세상의 평안은 늘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다. 잠시 평안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다시 시간이 흐르면 다시금 우리의 마음속에 불안한 마음들이 잡초 돋아 나는 것처럼 걷잡을 없을 만큼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런 평안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환경이나 상황에 좌우되는 평안이 아니라 영적 평안을 의미한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안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아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순간적이고 상대적인 안정감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참된 평안을 약속하신다.  

  -그렇다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수님의 평안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빼앗아 가는 현실적인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해주심으로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주시겠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다 해결됨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평안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것을 통하여 평안을 얻었다고 한다면 세상이 주는 평안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예수님이 주시는 영적인 평안은 폭풍우가 불어 닥치는 바다 한 가운데서도 동요되지 않는 평안이다.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걸어 갈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다.

  -두 명의 화가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의 평화>라는 제목으로 각각 그림을 그렸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깊은 산골짜기에서 은빛을 발하며 잔잔하게 뻗어있는 맑은 호수가 마음의 평안을 상징한다고 그렸다. 다른 한 사람은 이것과 대조되는 엉뚱한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천동 같은 소리와 함께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 옆에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자작나무 위에 둥우리를 틀고 있는 새 한 마리가 물보라에 흠뻑 적은 채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의 그림이었다. 그 화가는 이 새의 모습이 바로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나타낸 것이라고 그렸던 것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후자의 평안이 참된 평안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잔잔한 호수 같은 평안이 아니다. 그것은 바람이 없기 때문에 조용한 것뿐이고, 비가 쏟아지지 않기 때문에 맑게 보일 뿐이다. 잔잔하고 깨끗해 보이는 그 호수는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고, 비가 쏟아지면 흙탕물이 될 수 있다. 위험한 요소가 얼마든지 있지만 환경 때문에 잠깐 동안 고요한 것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폭포와 같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분위기 속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평안이다.    

3. 결론
-여러분! 진정한 평안은 오직 한 가지로부터 온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분명한 확신이 이러한 영적 평안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다윗의 시처럼 주님이 지금 현재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분명한 믿음과 확신이 우리를 진정한 평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의 영혼이 평안해지는 복을 받는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 속에 들어와 주셔서 불안한 마음속에 참된 평안을 주시고 기쁨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은혜가 넘쳐나길 기원한다.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