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 2007년 1월 7일 주일낮예배
이목사01-08 09:50 | HIT : 1,645
2007년 1월 7일 주일낮예배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시73:1-28)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아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리고, 몸도 건강하고, 자녀들도 잘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현실 생활에서 늘 평안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나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도 삶은 오히려 궁핍해지고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또한 예기치 못한 사건과 사고로 고통 받기도 합니다.  

   여러분 혹시 최근에 이런 뉴스 들어보셨습니까? 2002년 7월 김제시 국도에서 갓길을 걸어 새벽기도를 가던 부녀자 4명이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돌진한 화물차에 치여 모두 사망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과 얼마 전에는 상을 당한 성도를 조문하고 돌아오던 교회 버스가 운전자의 부주의로 난간을 들이 받고 추락하여 차 안에 타고 있던 교회 담임목사와 성도 수십 명이 그만 사망한 사건이나 또 어느 교회 수련회에서는 수련을 받던 학생들이 그만 물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들입니다.

   심심찮게 들리는 이런 소식들은 다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그렇게나 애쓰던 성도들이 이렇게나 허무하게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일어납니다. ‘아니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어떻게 이렇게나 신실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복을 더 주셔서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려야 될 것 같은데 풀리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믿지 않는 사람은 뭘 해도 다 잘되는 것 같은데 믿는 사람은 계속 일이 꼬여 가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문제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이러한 신앙의 딜레마는 우리만 가지고 있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구약 시대에도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깊게 근심하며 낙담하고 불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아삽이라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불평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아삽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공정하지 못한가를 보고 크게 실망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렵거나 고난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데,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더 번창하고 더 잘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저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이 질병도 없이 강건하다가 죽더라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저들은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도 재난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들의 소득은 마음의 원하는 것보다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저들은악인임에도 불구하고 늘 평안하고 재물은 더 많아 지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삽의 불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삽이 볼 때, 공의로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잘되고, 인정받고, 소원도 이루고, 재물도 풍성히 얻고, 득세하여 떵떵 거리면서 잘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자신은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고 있지만 늘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 중에 살아가고 있으니 이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삽의 이러한 탄식에 공감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아마 대부분 공감하실 것입니다. 아삽은 이렇듯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깊은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아, 하나님을 믿어도 별 볼일 없나보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지도 몰라’ ‘이럴 바에야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있나? 교회 다닐 필요가 있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더 고통스럽고, 어렵고, 힘든데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은 더 평안하게 잘 살아가니 굳이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떤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됩니까? 2절을 보십시오. “나는 거의 실족 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즉 넘어져서 실족할 뻔했다는 것입니다. 하마터면 믿음에서 떨어질 뻔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세상에도 이러한 모습이 넘쳐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 적인 눈으로 볼 때 분명히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불신자들이 더 득세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반면에 믿음 있다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초라하기가 그지없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를 쓰는데도 여전히 어려움과 고통이 하루하루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믿는 다는 이유로 조롱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믿음을 버릴까?” “교회를 다니지 말까?” “그냥 세상과 타협하며 살까?” 바로 아삽이 믿음의 길에서 실족할 뻔하였고,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고백했던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 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혹시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았습니까? 재미있는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농부 집에 송아지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송아지들은 무럭무럭 자라 이제 코를 꿸 때가 되었습니다. 이에 농부는 두 송아지에 코를 꿰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한 마리는 코를 안 꿰어도 일을 잘 할 테니 제발 코는 꿰지 말아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이에 농부는 그 송아지는 그대로 놔두고 다른 송아지에만 코를 꿰었습니다. 코를 꿰지 않은 소는 꿴 소를 보고 바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주인이 볼 때는 일을 하는 척 하면서 주인이 없으면 농땡이를 쳤습니다. 그러면서도 먹을 것이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 들어 먹어 살은 살대로 쪄갔습니다. 그러나 코를 꿴 소는 매일 매일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 소가 부러웠습니다. 자기도 코를 꿴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소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와보니 그 친구 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 것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악인의 형통함으로 인하여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도 이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잠언을 보면, “악인의 득의함을 보고 분을 품지 말라.”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아니 왜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믿지 않는 자들은 코를 꿰지 않은 소처럼 장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모든 것이 다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 형통함이 끊어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잠언 24: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등불을 분명히 끄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실 아삽처럼 세상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고, 또 우리에게 닥친 어떤 어려움들로 인하여 실망되고 낙심되는 때가 정말로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으로 인하여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형통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영원하기에 결코 낙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삽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믿음의 길에서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볼 때 아마도 아삽은 한동안 성전에 나가지를 않고 방황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허탈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성전에 나가서 기도를 하는 중에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성소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영적인 눈으로 믿지 않는 자들을 보게 되니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정 반대의 모습으로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아삽이 깨달은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악한 자들이 지금은 형통한 것 같아도 18절에 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께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고 결국엔 파멸에 던지신다는 것이고, 1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졸지에 황폐케 되고 멸망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 아삽의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믿지 않는 자들이 현재 이 세상에서 번영하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파멸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삽은 이 영적인 깨달음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전엔 3절에서 보이는 것처럼 “내가 행악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다.” 악한 자들의 형통함으로 인하여 질투하고 시샘 했습니다. 쉽게 말해 그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가 아팠고 부러웠습니다. ‘나도 저렇게 되어 봤으면.....’ ‘나도 저렇게 한번 떵떵거리며 살아 봤으면.....’ 하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는 오히려 자신이 현재는 어려움과 고통가운데 있어도 주님이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하늘과 땅에 주밖엔 사모할 자가 없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전엔 하나님이 자신에게 고난을 준다고 불평했는데 이젠 그런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다는 것이 이런 기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목적을 깨닫게 될 때 현재의 고난은 그 목적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도 질병도 고통도 근심도 다 하나님 안에서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삽의 경우를 보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삽은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다행히도 그것을 풀기 위해 세상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성소를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듯 세상의 문제들로 인하여 마음에 평안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할 때는 성소를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아삽에게 은혜를 부어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은혜를 부어 주시어 그 모든 문제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시고 굳센 주의 오른 팔로 우리를 붙들어 주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힘센 팔로 붙들어 주시니 그 어떤 시련도 넉넉히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옛날 바다에 빠져가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 건져 주셨듯이 또한 삶을 포기한 채 앉아만 지내던 앉은뱅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셨듯이 불평하던 아삽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듯이 주님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손을 잡고 넘어지지 않게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23절-28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여러분, 아삽은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 가면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제 해답을 찾게 됩니다. 그는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물질이 많고, 명예를 얻고, 일이 잘 되고, 평안한 것이 복이 진정한 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찾은 복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을 그는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그는 반대로 하나님을 멀리 하는 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말씀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에는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현재는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1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께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셨으며 결국엔 파멸에 던지움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형통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의 형통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질 수 있을까에 더욱 전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형통이나 이익들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따라 욕심 부리지 않고 사명에 충실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육체와 마음은 점점 쇠잔하여 약해져 갑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으로 영광스러운 복락을 누리게 되겠지만 하나님을 멀리 한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망의 2007년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마 여러 가지 많은 생각과 새로운 결심들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계획 속에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획들을 세우십시오. 그래서 올해는 다른 어느 해보다도 하나님과 더욱 친해지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바로 이렇게 될 때 여러분들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렇게나 소원하고 소망하는 모든 것들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2007년을 살아가다 보며 분명히 예기치 못한 고난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기쁨을 받아들이십시오. 왜냐하면 고난에는 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신앙인 ‘우찌무라 간조(1861-1930)’는 이런 고백을 남겼다. “나를 그리스도에게로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은 내게 있어서 모두 다 선한 일이다. 빈곤도 질병도 고독도 박해도 그렇다. 죽음, 그것까지도 다 이런 의미에서 선한 일이다. 내가 그를 구하고 있을 때 내게 있어서 선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해 많은 복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과 보다 더 가까워지십시오. 지금까지 세상과 가까웠다면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십시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예배, 말씀, 묵상, 기도, 전도, 봉사, 헌신 등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애쓰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들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로 인하여 보다 더 풍성한 삶이 되어질 줄을 믿습니다. 올 한해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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