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43]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수24:14절, 19-25절)
jejums07-01 14:11 | HIT : 1,483
                                                               어떻게 살 것인가?
                                                             (수24:14절, 19-25절)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과 관련된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 왕이 당시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였던 디오게네스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디오게네스는 평생 옷 한 벌만을 가지고 나무 통 속에 살았을 만큼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알렉산더가 디오게네스를 찾아간 날도 디오게네스는 강가에 누워 평화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게 보인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정복자 알렉산더가 아니라 옷 한 벌로 세상을 살아가는 디오게네스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신에게 부탁할 생각이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다시 태어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저처럼 발가벗고 일광욕을 하시면 될 거 아닙니까?”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지라 알렉산더는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얼버무렸습니다. “나도 지금 당장 자네처럼 일광욕을 즐기고 싶지만 난 할 일이 많은 사람이네. 세계를 정복하는 일이 내 일이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세계를 정복해야만 일광욕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을 왜 꼭 세계를 정복한 다음에 하려고 하십니까?”

여러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관점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줍니다. 알렉산더 왕은 세상을 일을 성취하는 관점에서 봤습니다. 그러니 세상은 할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광욕을 즐길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삶 그 자체를 즐깁니다. 얼마나 많이 성취하였느냐,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는 것은 그의 삶의 행복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어쩌면 가난한 디오게네스가 세상을 호령하는 알렉산더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세상을 살아도 어떠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정, 국가, 세계의 역사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어떠하든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십니까? 여러분들 앞에 놓여 있는 문제를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십니까?       

여기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나이 많아 늙어 죽음을 목전에 둔 여호수아는 어떠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봤을까요?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점에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봤을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여호수아서를 함께 묵상해 왔는데 여호수아서를 통해 보게 되는 여호수아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그것은 어떤 문제든지 늘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수24장에 나타나고 있는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여호수아의 관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여호수아는 과거에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과 관련하여 풀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겨운 삶을 이기고 가나안 땅까지 들어와 안식하게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수아는 늘 하나님을 주어로 놓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좋은 일도, 굳은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으로 세상만사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이렇게 말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남편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살고 있다.” “아내가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놓았다.”, “부모를 잘못 만나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어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다.” 물론 이런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분명 그렇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해석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야 무지하니까 이렇게 말 할 수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자신이 지금까지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하나님은 뒷짐만 지고 구경만 하고 계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가 아픔과 눈물 그리고 고통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늘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장로교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교단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으로 그분이 친히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역사를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역사를 마무리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것을 믿을 때 참으로 해석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고난의 문제입니다. 물음은 이런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하심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다면 왜 우리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이 찾아오느냐는 것입니다. 큰 죄를 진 사람에게 고난이 닥친다면 나름대로 죄를 져서 그런가보다 수긍하겠지만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고자하는 사람에게 닥치는 고난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우리가 잘 아는 데로 형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 13년간 죽도록 고생했습니다. 여러분! 13년 동안 종으로 고생을 하면서 요셉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마도 보통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날마다 자기를 종으로 판 형들을 증오하고 저주하고 기회만 오면 복수하겠다는 복수심에 불타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하심을 믿는 요셉은 달랐습니다. 자신이 종으로 애굽에 팔려왔지만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불평없이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결국 후에 보면 그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요셉은 13년 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종에서 애굽의 총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종으로 팔았던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두려워 떠는 형들을 저주하거나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

요셉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서 찾았습니다. 당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사람의 의도에 따라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 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서 하나님이 뜻이 계셔서 이렇게 하셨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가 괜히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통해서, 자주 만나는 이웃들을 통해서, 직장 동료들을 통해서 심지어는 대통령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계획을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고생하는 것 여러분의 가정에 어려움이 있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십니까?  

자연의 법칙은 인과응보의 법칙입니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성실하게 일하면 성공하고 게으르면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일하여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으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나도 잘되고 내 가정과 자녀도 잘 될거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해도 우리 자신이나 가정이나 자녀가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연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신앙생활 잘해도 병 걸릴 수 있고, 가정에 심각한 어려움을 당하게도 되고, 자녀는 삐 뚫어져 근심이 되는 것들 이 모든 것이 나를 단련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것이다.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떨어져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성실하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병으로 고생하여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말 못할 어려움을 겪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떳떳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악조건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어떤 문제도 쓸모없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슬픔과 기쁨, 고난과 영광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아름다운 하나님의 역사로 짜여 지게 될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성실과 진정으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깁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삽시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 되셔서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복되고 거룩한 삶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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