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40] 이 땅을 거룩한 땅으로 (수23:1-3절)
jejums06-10 10:01 | HIT : 1,613
                                                                     이 땅을 거룩한 땅으로
                                                                            (수23:1-3절)

시간이 흘렀다. 치열했던 가나안에서의 정복전쟁이 과거의 사건으로 기억되어갈 쯤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여호수아가 이제 나이 많아 늙어 하나님 나라로 갈 때가 다가왔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여호수아의 이 세상에서의 삶도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용맹스럽던 모습으로 가나안 땅을 주름잡았던 여호수아도 세월의 흐름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머리는 흰 눈과 같이 희어졌고, 얼굴에는 많은 주름들이 훈장처럼 그려지고 온 몸은 노쇠하여졌습니다. 어디에도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여호수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시간 앞에는 장사가 없는 듯 싶습니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흐르는 물과 같이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을 따라 흘러갈 따름입니다.

점점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에 두고 그렇게나 아끼고 사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마지막 유언을 남기게 됩니다. 바로 오늘의 말씀인 23장이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이 담긴 글입니다.

여호수아는 왜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을 남기게 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제 삶을 정리해야 할 시점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신앙을 유지해 왔는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며 둘째는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할 것인지를 다시 한번 당부하기 위해서 이렇게 유언을 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은 비록 이렇게 늙어서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사실 여호수아가 이렇듯 간절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유언을 남기는 것은 그 당시의 사회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1절 말씀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위의 대적을 다 파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의미의 말씀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세력을 다 물리쳐 주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대항 세력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가나안 사람들 중에는 무기를 들고 이스라엘을 공격할 자들이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 족속들이 다 없어졌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 민간인들은 여전히 가나안 땅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만 살게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가나안 사람들도 함께 살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사람들과의 또 다른 차원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전처럼 칼을 빼 들고 싸우는 눈에 보이는 전쟁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함께 어울려 살면서 싸워야 하는 영적인 전쟁이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호수아가 이렇게 유언을 남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아주 평화로운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가나안 땅의 상황은 마치 오늘 우리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봐도 믿는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종교와 사상, 그리고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공격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치열한 영적인 전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이 유언의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이웃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웃이라고 말은 했지만 어찌 보면 가나안 사람들은 ‘위험한 이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모든 면에서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전부터 살고 있었던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들은 전혀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나 싫어하시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렇게나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족속들을 완전히 몰아내라고 명령하셨던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족속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함을 지킬 수 없기에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없어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들과 이웃이 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왜 위험한 이웃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차피 하나님을 모르는 가나안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고 살 수밖에 없다면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살아야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과 함께 살 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나안 사람들에게 동화되는 것입니다. 그들처럼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반대로 신앙의 힘으로 이 땅을 거룩한 땅으로 또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가나안 성시화(聖市化)’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 그 땅 전체를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성시화 운동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믿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봐도 우리의 이웃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우리가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대두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절대로 우리는 이 세상에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을 신앙의 힘으로 거룩한 땅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앙의 힘으로 이 세상을 거룩한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수를 지금보다 더 많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 땅은 어떻게 될까요? 더욱 거룩해질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거룩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질 때 이 땅 가운데 사단 마귀의 권세는 발을 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개인 전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어서 개인 전도보다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개인 전도가 생활화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변화시킬 때 이 땅이 거룩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한 기독교적 생활윤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믿는 사람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생활하는 모습이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이 땅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감동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문 방송을 보면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좋은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후미지고 어두운 곳,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이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비단 이렇게 눈에 띄는 일이 아니어도 개인적으로도 기독교적 생활 윤리를 실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이 먼저 희생한다거나, 돈 거래를 할 때도 투명하고 깨끗하게 한다거나, 세금을 내는 것에 있어서도 부정하게 하지 않는 것 등등 이렇게 우리 개인들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이 땅은 더욱 거룩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강한 자부심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다’는 자긍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부심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강한 자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능력 있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강한 자의식은 어떻게 해야 생길까요? 바로 말씀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떳떳하게 나타낼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의 은혜가 우리를 떳떳하게 하고 용기 있게 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충만한 사람은 당당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의 은혜를 받아 이 세상에서 떳떳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이 변화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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