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은 은혜의 통로입니다 / 2006년 12월 24일 주일낮예배
이목사01-08 09:48 | HIT : 1,430
2006년 12월 24일 주일낮예배

                                            약함은 은혜의 통로입니다
                                                     (눅1:39-55)

   성탄절이 오면 성탄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마리아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루어질까요?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으신 육신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려면 언제나 마리아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나 유명한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일반적으로 마리아가 그려져 있는 성화를 보면 그 모습이 비슷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거나 반짝이는 반지를 끼고 금으로 수놓은 호화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또 어떤 그림에는 머리 뒤로 형언할 수 없는 후광이 비취기도 하는데 대단히 신비스런 모습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어가면서 보게 되는 마리아의 모습은 위에서 봤던 그러한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마리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왕관을 쓴 왕족이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셔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반지를 끼고 비단옷을 입고 있었던 부자였을까요? 그렇다면 요셉과 마리아는 머물 곳이 없어 말구유를 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왕족도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당시로 보면, 아주 가난한 여인, 그리고 순박한 시골 여인으로 낮이면 들에 나가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일을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굉장히 낮고 비천한 여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성탄절에 보통 성극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배역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할이 누구입니까?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를 뽑을 때 보면 주로 어떤 아이를 마리아로 뽑게 됩니까? 대부분 아이들 중에서 가장 예쁘고 참하고 똘망 똘망한 아이를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리아는 예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리아는 정말 예쁜 여자였을까요? 저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의 판단으로 볼 때 가장 낮은 곳에, 그리고 가장 보잘것없는 곳을 통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이 본문에서 정말 찾고 싶은 것은 마리아의 겉모습이 아닙니다. 외모가 어땠는가? 사회적 신분은 어땠는가?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하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정말 보잘것없는 여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과 은혜를 입은 그 여인이 부른 노래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녀의 고백처럼 정말 비천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에게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세상에는 정말 괜찮은 여인들도 많은데 왜 하필 마리아같이 비천하고 부족한 여인에게 은혜를 주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우리의 제한된 지식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그 원대한 뜻을 100%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마리아가 별 볼 일없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괜찮다 싶은 사람이 하나님의 관심밖에 놓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 은혜 받았던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보기에도 그 정도면 괜찮겠다 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족함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다지 내 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쓰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이것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약한 것이 그리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때로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보면, 가난하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함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있고, 병들었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은혜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경 한 번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사업이 망하고 부도를 내서 감옥에 가게 되어 거기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 은혜를 입은 분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내다가 환난과 시험 가운데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서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들은 평안하고 부하고 건강하고 마음먹은 대로 모든 일이 잘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돈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향락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탐욕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걸 보면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갈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얼마나 더 축복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늘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저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겨우 하나님을 찾아 눈물 흘리며 엎드리니 하나님도 답답해하실 듯싶습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하고 겸손하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그 은혜가 보존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TV 드라마 제목 중에 ‘있을 때 잘해’ 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아내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던 남자가 이혼한 후 아내를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신앙적으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가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울고불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우리같이 비천한 자를 사랑하셔서 은혜주신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늘 감사하면서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될 줄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부른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마리아의 이 노래는 우리가 잘 아는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은혜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합니다. 46절부터 4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마리아는 자신이 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바로 자기와 같이 비천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여 찬양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누가 감사할 수 있습니까? 좋은 것을 받았다고 누구나 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는 자신이 좋은 것을 받았다고 가슴깊이 깨닫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받아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좋은 것을 받아도 무감각합니다. 감격도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며 교만합니다. 사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감정입니다. 동물은 결코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존슨은 “감사는 위대한 교양의 결실”이라고까지 말했던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감사해야 함에도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영혼이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경험과 감사의 표현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은 매사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비록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들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책 중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만약 내가 3일 동안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우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의 소망은 우리가 매일 누릴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것들에 대하여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감사를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범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목숨만큼이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찬양하는 이유가 자신의 비천함을 돌아보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찬양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마리아는 자신의 고백만큼이나 정말 비천한 여자였습니다. 그 당시 그녀가 살던 곳은 나사렛이라는 곳이었는데 이곳은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라고 말할 정도로 멸시와 천대를 받던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곳에서 하루하루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아마 하나님이 아니었더라면 그저 그럭저럭 살다가 먼지같이 없어질 인생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천한 여인을 하나님이 값지게 하셨습니다. 만대에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큰 위로가 됩니다. 마리아와 같이 비천한 자를 돌보셨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 또한 그렇게 돌보고 계심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2000년 전에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아주 보잘것없는 우리를 너무나 값지게 만드십니다. 아무런 소망 없이 먼지와 같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기가 막힌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깨닫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종종 우리는 이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때 우리의 연약한 부분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가기도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까지도 게이치 않으시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다 인정해주시고 받아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약점이 결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자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부족함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시고 그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오직 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며 찬양하며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십시오. 가식적인 모습은 필요 없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오히려 그 모습들을 다 덮어 주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돌아보신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면서 48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큰 복을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나 확신있게 선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셨다고 믿는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분명히 큰 복을 주실 것이다 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빈말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다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확신있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위대하게 귀하게 복되게 만드시는 분임을 믿으십시오.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선포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확신대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또한 49절에서 이어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여러분, 마리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마리아에게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비천한 여인이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천지가 다 아는 여인이 된 것입니다. 인생 역전도 이런 인생 역전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 이름 없던 한 여인이 이런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임한 이러한 일은 사실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에 메여 헛된 죽음을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들을 선택하셔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셨으니 이것이 인생 역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날 이렇게 인생 역전의 주인공인 우리들에게 큰일을 시작하신 줄 믿습니다. 모든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여건이 다 다르기에 획일적으로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신 하나님은 각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큰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하나님을 설명할 때 잘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측불허의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깊은 절망의 끝자락에 있다할지라도 또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상황을 역전시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친히 드러내기도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한 어떠한 순간에도 희망을 거두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역전시켜 기쁨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해 큰일을 이루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오늘도 힘차고 능력있게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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