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기적을 만듭니다(2) / 2006년 12월 17일 주일낮예배
이목사12-18 15:57 | HIT : 1,361
2006년 12월 17일 주일낮예배

                                                  사랑은 기적을 만듭니다(2)
                                                            (눅7:1-10)

   두 번째 우리가 찾아볼 부분은 백부장의 삶의 모습입니다. 백부장은 본문을 통해 볼 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백부장이 자신의 종을 위하여 유대인 장로들을 예수님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보냄을 받은 장로들은 예수님에게 그를 위하여 간절히 구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로마인인 백부장이 유대 장로들에게 부탁을 하고 유대인인 장로들은 그의 청을 받아들여 도움을 주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사실 이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당시엔 이런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이방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과의 접촉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방인인 백부장에게 유대인의 장로들이 그 어떤 거리낌도 없이 적극적인 호의를 베풀고 있습니다. 이것은 백부장이 민족과 종교를 초월하여 어느 정도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은 백부장의 청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곤 예수님에게 그의 청을 전하기 전에 먼저 그가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호의를 베풀었는가를 이야기 합니다. 특별히 그들은 그가 유대인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준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회당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회당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전과 더불어 대단히 중요한 장소입니다. 성전이 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면, 회당은 제사뿐만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고, 어린 아이들을 교육하며, 더 넓게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교제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실로 이곳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대단히 중요한 장소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나 중요한 건물을 유대인도 아닌 로마인이 세워주었으니 유대인들이 볼 때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겠습니까? 거기에다 백부장이 다른 사심을 가지고 회당을 지어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이렇게 했으니 더욱 유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록 그가 그들이 경멸하는 이방인이었지만 그를 사심 없이 받아들이고 함께 교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그렇게나 비타협적인 유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이지 각고의 노력과 많은 시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특별히 우리같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더 더욱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에 대해 좋지 못한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는 이 편견이 더 심한 곳입니다. 그래서 전도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전도를 함에 있어 최대의 걸림돌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사실 지역적인 특징이나 풍습, 성향 또는 타종교들의 영향들이겠습니까? 사실 이런 부분이 약간의 영향은 있다할지라도 궁극적인 걸림돌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도를 방해하는 최대의 걸림돌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바르게 행동하지 못함으로 비난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실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입었거나 물질적인 피해를 입음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믿는 예수라면 나는 안 믿는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말입니까? 전도는커녕 오히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믿는 사람들의 행동 하나 하나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성경도 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예수를 믿을 것인가 안 믿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 현재 믿고 있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역시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삶으로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그저 입으로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한 사과장사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수없이 그 아주머니를 전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머니가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됐는지 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우리 가게에 들르는 한 신사분이 있었어요. 그분은 항상 못생기고 덜 싱싱한 사과를 사갔어요. 너무 미안해서 사과를 몇 개 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어요. 지금 당장 먹을 것이기 때문에 좀 썩은 것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 대신에 남들에게 싱싱한 사과를 팔라고 했지요. 저는 그때부터 그분에 대해 조금씩 존경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제게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잖아요. 그분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기 위해 두 말 없이 따라 나섰지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이라도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줄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퍅한 사람이라도 어떤 모양으로든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들은 믿는 자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 이런 삶이 참으로 멋진 삶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그냥 전해지지 않습니다. 감동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자기 헌신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손해 볼 각오와 희생할 마음이 없으면 결코 세상은 예수님이 바라는 세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된 삶을 사십시오. 그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는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십시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오늘 본문의 하이라이트인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백부장은 예수님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소문으로만 듣고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며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자신의 지위가 높은 것을 가지고 나아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하며 겸손하게 나아갔습니다. 사실 예수님께 칭찬 받았던 백부장의 믿음은 여기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교만할 수 있을 만큼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사람이 겸손함으로 나아온 것이 예수님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사실 부족한 우리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당당하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능력이 있고, 물질이 많고, 권세를 가지고 또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삶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앞에서는 다 무용지물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을 제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는 다 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마음을 더욱 교만하게 하여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마음’ 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기고만장하여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교만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된다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바로 본문의 백부장이 그렇게 예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주여 수고하지 마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우리는 백부장의 이 고백을 통해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분의 힘으로 예수님께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에 대해 들었던 소문만으로도 자신이 감히 그 앞에 설 수조차 없는 분이라는 확신으로 스스로 겸손하게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자비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는 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기적과 능력을 많이 행했던 사도 바울도 고전15장 8절에서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시니” 자신이 얼마나 완전치 못하고 부족한 사람인가를 간곡하게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사6장 5절에서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여” 라고 했습니다. 자신같이 부정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그 거룩한 일을 감당하겠는가라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성자 어거스틴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어거스틴의 제자들이 어거스틴에게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어거스틴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겸손이니라” 그러자 또 제자들이 묻습니다.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또다시 말합니다. “겸손이니라” 그러자 제자들이 또 묻습니다.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마지막으로 “겸손이니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가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겸손에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을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시고 크나큰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또한 본문 7절을 보십시오. 본문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우리는 이 고백을 통해서도 백부장은 겸손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는 겸손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능히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이 자리에 예수님이 안 계셔도 어느 곳에서든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어떤 조건과 환경이 구비되어야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건과 환경이 열악하면 쉽게 낙담하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러한 조건과 환경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데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는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확실한 믿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해 줍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믿음대로 행하셨습니다. 즉 백부장의 말대로 그곳에 가시지 않고도 말씀만으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확실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가능하다라고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간구대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백부장에게 이런 능력이 나타난 것은 그가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 불신하고 있을 때 이방인인 백부장은 예수님이 말씀만으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참 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이러한 모습을 기이한 믿음이라고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이 세상의 모든 권세가 누구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모든 인생의 생로병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모든 일의 성패의 열쇠를 쥐고 계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살피시며, 우리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문제들을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러한 은혜가 넘쳐나길 원합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문제를 내어 드림으로 그분이 역사하시는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 살아있는 증인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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