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기적을 만듭니다(1) / 2006년 12월 10일 주일낮예배
이목사12-12 13:01 | HIT : 1,425
2006년 12월 10일 주일낮예배

                                                  사랑은 기적을 만듭니다(1)
                                                           (눅7:1-10)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우리는 쉽게 십자가의 불빛이 반짝이는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통계 자료에 의하면 오늘날 술집 다음으로 많은 것이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니 주위에서 교회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교회 수만큼이나 교회를 다니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5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중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1천만 명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통계 자료를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분의 1일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인데 참으로 놀라운 수치입니다. 120년이라는 짧은 기독교 역사를 놓고 볼 때, 이렇게 단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이룬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10개중 5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이러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이러한 외부적인 성장만을 놓고 본다면 자랑할 만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외부적인 성장만을 가지고 자랑하기에는 너무 나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은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입니다. 외형적으로 교회는 많아지고 덩치는 커졌으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실질적으로 교회나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여러분 교회와 성도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저 그럭저럭 살다가 천국 가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하나님 믿는 성도로 부르신 목적은 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 세상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변화시키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이런 일에 점차 무관심해지고 무능력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명에는 관심이 없이 그저 믿는 사람들끼리 교회에 모여 즐겁게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시대를 바라보신다면 우리의 교회와 믿는 우리들을 향하여 어떤 말씀을 하실까? 아마 “잘했다” 칭찬하시기 보단 오히려 눅9장 41절에, 어느 소년의 간질병을 고치지 못함으로 무리에 의해 조롱을 당하고 곤혹을 치르는 제자들과 사람들을 향해 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 있는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주위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 중 내가 보기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것 같다, 또는 내가 본받을 만한 믿음을 가졌다고 느낀 사람을 만나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함에 있어 너무 외형적인 면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거나,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거나, 헌금 생활을 잘하거나, 전도를 잘하면 그 사람은 무조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것이 부분적으로는 그 사람의 믿음을 가늠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런 것들이 진정한 믿음을 알아볼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우리는 믿음 없이 예배할 수 있습니다. 믿음 없이 봉사할 수 있고, 믿음 없이 헌금할 수 있으며, 믿음 없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기 위해서 또는 기복적인 생각에서 또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런 모습을 기뻐하실까요? 분명히 이런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성경을 통해 볼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중심이 제대로 잡혀 있는 믿음입니다. 여기서마음의 중심이란 마음의 의도와 연결되는 것인데, 무엇을 하든지 그 마음의 의도가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기 위해 행하는 것을 기뻐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믿음을 칭찬하시기도 하시고 책망하시기도 하십니다.  

   성경은 특별히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성경이 이렇듯 믿음 있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들에게 진실로 ‘믿음 있는 사람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라는 것을 보여줌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은 삶을 살 것을 강권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적인 믿음의 사람으로서 한사람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믿음을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에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니 대체 이 사람이 어떠한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에게 이런 칭찬을 받게 되었던 것일까요? 여러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름이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름을 알 수 없는 백부장’이었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보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이 후세에 남는 명예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우리에게도 그런 소망이 있을 줄 믿는데,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사명을 다 이루었으므로 어느 날 하나님이 하늘나라로 올라오라고 부르실 때 그저 아멘하고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후세에 남느냐 안 남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기뻐할 것은 이 세상에 이름이 기억되는 것으로 기뻐하기보다 하늘나라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으로 더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에 나오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백부장이 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나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던 것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백부장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 당시 로마의 군대 장관으로 백 명의 군사를 지휘하는 권한을 가진 하급 장교였습니다. 당시 군대 조직은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으로 대표되는 지휘 체제를 통해 움직여졌습니다. 십부장은 열 명의 군사를 지휘하고, 천부장은 천 명의 군사를 지휘하는 장교였던 것입니다.

   지휘관들이 다 그렇듯이 군사를 지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명령체제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져야 하는 군의 특성상 지휘관은 늘 엄격한 군율로 군사들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당시 로마가 아직도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지휘관들은 항상 긴장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신경은 늘 날카로워져 있었고 그러니 당연히 무엇을 하든지 친절이나 자비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전투에 능숙하고 용맹한 로마군대의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엄격하고 차가워 보이기는커녕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을 보면, 그는 신분적으로 천한 자신의 종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깁니다. 사실 그 당시 종이라고 하는 것은 노예를 의미하는 것인데 사실 사람이면서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존재였습니다. 당시 종과 동물이 다른 것은 오직 하나였다고 합니다. 동물은 말을 못하고 종은 말을 할 줄 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렇듯 하찮은 동물 취급을 받는 종을 위하여 백부장이 친히 그 종을 살리기 위하여 행하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입니다.

   어느 날 백부장은 예수님이 마을 주변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이에 백부장은 친히 친분이 있던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자신의 종을 치료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요구가 뭐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프라이버시가 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던 로마 장교가 이렇게 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문제가 아닌 보잘것없는 하찮은 종을 위하여 이렇게 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백부장의 모습을 통해서 그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고 어려움을 배려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백부장이 원래부터 이러한 성품을 타고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이 백부장이 원래 이러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군인의 일을 하다보면 분명히 성품이 바뀌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그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그가 예수님을 알게 됐고, 어떻게 해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는가를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을 놓고 볼 때 그는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던 사람이 믿음이 생기면 변화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 가지고 있었던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강퍅하던 마음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을 소망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부드럽고 연한 순 같은 마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자신만 알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았는데 점차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눈과 마음이 열려지게 된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갔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백부장이 이렇듯 비천한 종을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무엇보다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22장 37-40절을 보면,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이여 많은 계명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많은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 사랑이요, 또 다른 하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거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선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안식일에 사람이 병에 들어 죽게 되어도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란 계명 때문에 그냥 그 사람을 방치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더불어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찌 눈에 보이는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느냐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웃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의 마음으로는 온전히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도 이기적이어서 이웃보다는 우리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을 무조건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우리의 힘으로는 그대로 따르기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것까지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이웃을 이렇게 사랑하기가 힘듬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이웃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이웃 사랑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면서 까지 살릴 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관점으로는 사랑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백부장에게는 바로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하찮은 종이지만 그 종을 가치있게 생각했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종을 ‘사랑하는 종’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영어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매우 가치 있는 종(his master valued highly)’ 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백부장이 그 종을 가치 있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기십니까?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귀천에 상관없이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혹시 외모를 가지고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진정한 이웃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진정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고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인간이 보기에 하찮아 보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천하보다 귀하고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십시오.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 몸을 정성스럽게 아끼고 보살피듯이 사랑하십시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셔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피 흘리신 그 공로가 헛되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겨주십시오. 그렇게 될 때 모든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12월 성탄을 기다리는 연말연시입니다. 늘 이맘때면 거리에 이웃을 돕자는 캠페인이 활발하게 넘쳐납니다. 매년 이맘때 이러한 캠페인이 전개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주위엔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로서 올해에도 그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이웃에게 전하는 뜻깊은 12월이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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