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가 필요합니다 / 2006년 12월 3일 주일낮예배
이목사12-03 16:40 | HIT : 1,479
2006년 12월 03일 주일낮예배

                                                      준비가 필요합니다
                                                         (눅21:29-36절)

   오늘은 교회력으로 보면 대림절입니다. 대림절은 이번 주부터 시작해서 성탄절 전야까지 4주 동안 이어지는 절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탄절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면서도 대림절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림절은 성탄절만큼이나 중요한 절기입니다. 4주간 지속되는 대림절 기간,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들은 어떻게 이 기간을 보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이 기간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아야 합니다. 더불어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시간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4주 동안엔 되도록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맞아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어떠한 자세로 예수님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 아이가 주일학교 예배시간에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 그리고 그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천국에 대한 말씀은 이 아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이 아이는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달려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예배 시간에 그러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정말 좋은 천국을 준비하셨데요.” 그러자 그 아이의 엄마는 웃으면서 “얘야 천국이 그렇게 좋은 곳이니! 그럼 나도 가고 싶은 걸” 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그 아이는 엄마에게 대뜸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여행을 갈 때 여행준비를 철저하게 준비하잖아요. 그런데 왜 아름다운 천국 여행을 위해서는 아직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으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천국이 있음을 믿습니까?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아마도 천국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은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태를 보면, 천국은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이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되는지 천국에 갈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아의 홍수심판 이야기를 보면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그러했습니다. 노아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노아를 향하여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세상이 한없이 평화롭고 날씨마저 화창하고 좋은데 무슨 홍수가 온다는 것이냐며 비웃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 시대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높은 산위에서 홍수를 대비해 배를 만드는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이 정상적인 사람들로 보였겠습니까? 100%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세상 쾌락에 빠져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대로 비가 내려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을 조롱하던 모든 사람들이 이 홍수 심판으로 모두 죽는 불행한 일을 겪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성도들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우리 또한 엄청난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예. 예수님의 재림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곧 세상의 종말인줄도 믿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거 같은데요. 뭐 특별한 징조도 없는걸 보니 아마 예수님이 오시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지 못한 성도들을 향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주님 오심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교훈해 주십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가운데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있으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기에 그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이 경계하실 정도로 잠들어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는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의 생활을 과거보다는 물질적으로 더 한층 안락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물질적 풍요로움은 불행하게도 신앙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과거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들이 강렬했는데, 하나님이 없어도 잘 살 것 같은 풍족한 환경이 만들어지니 점점 우리의 영혼이 세상의 안락함에 파묻혀 하나님을 잊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왕이 처음부터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 사람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초창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초창기 시절 왕으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너무나 통감한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셔서 그에게 모든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물질의 풍족함과 형통함 속에 있을 때 나타났습니다. 삶이 풍족하다보니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들었고 결국엔 하나님께 책망 받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오히려 그를 신앙적으로 잠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인 루터가 어느 날 희한 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 사단이 그리스도인들을 전멸시키기 위해서 자기 부하들을 이 땅에 내려 보냈는데, 얼마 후 보냄을 받은 부하들이 올라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첫 번째 부하가 보고 합니다. “대장님, 저는 사막에서 전도여행을 가고 있는 예수쟁이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들이 무서워서 도망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자의 입 앞에서도 평화롭게 기도를 해서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부하가 보고 했습니다. “저는 바다를 항해하는 예수꾼들에게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두려워 떨 줄 알았던 그들은 오히려 배위에 올라가서 찬송을 부르더군요.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세 번째 부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렇게 보고 했습니다. “대장님, 저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한 교회를 찾아가 10년 동안 모든 일이 잘되고 평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영과 육이 완전히 썩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잘되고 평안한 것이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더 깊은 잠 가운데 빠져들도록 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신앙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일에 파묻히다 보면 헤어 나오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수렁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연구 기관에서 개구리를 가지고 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개구리가 깜짝 놀라 펄쩍 뛰어 올랐습니다. 다음엔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적당한 온도에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개구리가 꿈쩍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때 서서히 온도를 높여 물을 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개구리는 물에 서서히 적응되었는지 물이 펄펄 끊는 상태에 이르러서도 물에서 나오지 않더니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어찌 보면 개구리의 이 모습이 물질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하루하루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이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다보면 우리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영혼이 서서히 잠들어 가다가 결국엔 치명적인 함정에 빠져 죽을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우리가 세상에서 깨어 있는데 있어 장애물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34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무엇이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을 둔하게 만든다고 말씀합니까? 바로 방탕한 삶이  술취함이 그리고 생활의 염려에 사로잡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둔하게 만든다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이 말씀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생활의 염려가 우리의 영적인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할까? 어떻게 살아갈까?’ 등 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염려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믿음이 없을 때 생겨나는 것들입니다. 믿음이 없이 생활의 염려에 사로잡히게 되면 필연적으로 우리 마음이 둔해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둔한 마음에는 주님께서 ‘내가 네 모든 일을 책임져 주겠다. 내가 너를 그 나라에 갈 때까지 인도해주겠다’ 고 약속해도 그 음성을 들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얼마나 생활에 대해서 염려를 많이 합니까? 예수님이 그렇게나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도 여전히 우리는 생활가운데서 염려합니다. 교회에 있을 때는 생활에서 만나는 일들을 가지고 염려하지 않을 거 같은데 생활의 현장으로만 나가면 아주 작은 일들을 가지고도 염려합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요, 자녀들이 뜻대로 자라주지 않아 걱정이요, 가정에는 무슨 문제가 그리 많은지 하루도 그냥 넘어갈 날이 없어 걱정이요, 직장이나 사업장은 또 왜 그리 문제가 많은지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어 걱정입니다. 이리 저리 부딪치는 모든 일들이 다 걱정거리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염려라도 그것에 몰두하다보면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육신의 어떤 일에 몰두해 있으면 나머지 다른 감각은 무뎌지는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길 때는 모든 영적 감각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지만, 생활에 대한 염려로 주님을 향한 마음이 나뉘어지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경고하시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는 육신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삶은 우리를 생명이 아닌 사망과 절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계속적으로 이러한 육신적인 삶을 살게 되면 궁극적으로 영혼은 황폐해지고 쇠약해져 기쁨도 없고 평안함도 없는 영적 황무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방탕함과 세상의 염려들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의 어떤 유혹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우리가 늘 기도에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기도에 힘쓰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다른 이유보다도 사단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어떻게 해서든지 믿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한 사람이라도 신앙에서 떨어뜨리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는 신앙은 우는 사자와 같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사단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시험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우리가 돌아보면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른 무엇보다도 기도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시작을 기도로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면서도 틈만 나시면 기도하셨고,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도가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렇게나 기도를 중히 여기시고 기도하는데 열심을 내셨다면 우리같이 연약한 존재들은 얼마나 기도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 가지 마음으로 갈등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 것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즐거움을 구하며 살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즐거움을 얻으려는 겉사람의 정욕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속사람의 의지가 끊임없이 대립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행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사도 바울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싸움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거져내랴”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 이 어려운 영적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사단의 간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기도 할 때 사단의 속임수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은 분명히 쉬운 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나아간다면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단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셨기에 우리 또한 예수님과 동일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시며 선하신 뜻을 좇도록 늘 기도에 힘씁시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준비가 깨어 기도하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 주님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주를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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