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은 갈등을 뛰어넘는다 (창13:1-9)
이목사08-30 16:56 | HIT :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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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누구의 자녀? 바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책임져주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우리는 참으로 복된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어 복된 삶이 시작되면 우리의 삶, 만사형통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 성경 어디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이 말은 예수 잘 믿어도 잘되지 않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예수님 믿으면 좋지 않은 환경이 달라질까? 이것도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예수 믿으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달라지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음’이다. 하나님은 환경을 바꾸시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데 관심이 있다. 왜 그럴까?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하는 말 중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마음을 바꿔주시면 어떤 환경도 이겨낼 수 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어떤 갈등도 해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환경보다는 우리 마음을 바꾸시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주에 봤던 아브라함은 기근 앞에서 마음을 잘 지키지 못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 결국 자기의 뜻대로 애굽에 내려갔다가 많은 수고와 수치를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셔서 그의 실수를 덮어 주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모든 축복들이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마찬가지 인 듯 싶다. 실수하는 것으로 따지자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다 연약하지 않는가! 부족하지 않는가!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없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 세상을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되는 줄로 믿는다.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던 아브라함이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무사히 돌아오게 된 것.., 다 ‘하나님의 은혜’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그래서 돌아온 후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1-4절을 보자!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 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더 특별히 감사한 일이 있다. 그것은 무사히 돌아온 것도 감사한데 아브라함이 사라의 일로 인해서 애굽에서 많은 가축과 은과 금을 얻어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은 실수까지도 사용하셔서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이 자기 살겠다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그로 인해 아내를 빼앗길 뻔한 일을 겪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일로 인해 그가 부자가 되었으니... 그렇다. 하나님은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분인 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도 좌절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늘 신뢰하시기 바란다.  

자 이렇게 해서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 그 다음에는 아무 문제없이 잘 지냈을까? 그렇지 않다. 바람 잘 날이 없으면 인생이 아니다. 그렇게 사이좋던 아브라함과 조카 롯 사이에 생각하지 못한 일로 인해 갈등이 생긴다. 5-7절을 보자.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이러니하다. 서로 소유가 많지 않았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서로 소유가 많아지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다.

본문에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다고 한다. 아마도 서로 가축이 많다보니 가축을 치는 데 있어 서로 좋은 장소를 차지하려 하다 보니 다툼까지 일어나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보면 소유가 없는 것만 걱정이 아니라 많아도 걱정일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경우 좀 보지 않는가! 우애가 좋던 형제가 부모 유산을 놓고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다투다 나중에는 법정 다툼까지 벌어져 좋았던 사이가 남들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욕심이 문제다. 그래서 약1:15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한 것이다. 욕심은 자족과 감사로 물리칠 수 있다. 있는 것에 만족하며 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보지 않고 살면 되겠지’하고 무시하면 되겠지만 이들 그럴 수 없는 사이 아닌가! 떨어질 수 없는 너무 가까운 사이 아닌가! 이런 경우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 어떻게 이 갈등을 해결해야 할까? 우리도 살다보면 가까운 사람들과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아브라함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통해서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먼저 7절을 보자. 아주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지금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앞에서 봤던 것처럼 서로 많은 가축을 거느리고 있다 보니 가축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 다퉜을 확률이 높다. 결국 이 소식을 아브라함과 롯이 듣게 되었다. 여기서 만약 아브라함과 롯이 목자들 간의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브라함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보통 동양 문화권에서는 이럴 때 주로 누가 연장자냐를 따질 때가 많다. 분명 아브라함이 연장자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이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롯도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다툼이 더 크게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롯에게 자기의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모든 것을 다 양보한다.

왜 그랬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7절을 보자.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잘 보면 그들이 거하고 있는 곳에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들이 다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보고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서로 다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브라함은 얼마를 더 가지느냐에 초점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일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이렇게 행한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우선순위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다. 내 이익이나 내 유익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다면 우리는 손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존심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갈등을 해결할 때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을 하든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결정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8-9절을 보자!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 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롯에게 찾아가서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어떤 분들은 갈등을 해결한답시고 잘잘못을 막 따지려고 하는 분이 있다. 그런 것은 갈등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누구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면 서로 감정만 상하고 관계만 악화될 수 있다. 당연히 갈등도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본문의 아브라함은 이런 갈등 상황 앞에서 ‘우리는 한 친족’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 말은 ‘같은 집안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할 사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바로 ‘관계’다. 아브라함은 이런 갈등으로 인해 관계가 깨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실리를 아낌없이 양보한 것이다. 9절에서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사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자기 실리를 차지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롯에게 네가 원하는 곳을 먼저 차지하라 한다. 양보한 것이다.

갈등이 왜 잘 해결되지 않을까? 이유는 자기가 손해 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내가 손해 보기로 결심하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다퉈서 분열 되기보다는 내가 손해보고 하나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어떤 갈등도 풀린다. 아브라함은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이다. 이런 문제로 갈등이 깊어져서 롯과의 관계가 깨어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익보다 관계를 더 중시하여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관계다. 특별히 우리같은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 아닌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고 한다면 혹시라도 사람들과의 갈등 상황을 만나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그 갈등을 풀어가야 할 줄로 믿는다.

나는 아브라함이 자기의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롯에게 실리를 양보한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왔다고 본다.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양보하고 손해까지도 감수한 것이다. 그렇다. 믿는 사람은 이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해서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이 더 큰 것으로 풍성히 채워주실 것이다. 어떤 갈등 상황에서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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