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을 이기려면(1) (눅4:1-13)
이목사12-15 17:11 | HIT : 1,260
                                                                          유혹을 이기려면
                                                                            (눅4:1-13절)

재미있는 얘기 인데 50대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5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돈, 둘째는 자녀(딸), 셋째는 친구, 넷째는 애인, 다섯째는 남편이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50대 남성들은 첫째가 돈, 둘째가 아내, 셋째가 자녀라고 합니다.

세대를 망라해서 사람들이 필요로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첫째가 돈, 둘째가 권력, 셋째가 지식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들이 우리 인생에 행복을 주고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구원을 가져다주는가를 면밀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살이에 이 세 가지는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침대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편안한 잠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고, 집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행복한 가정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은 이런 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 물질이나 권력, 그리고 지식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이것들에 집착합니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이것들을 얻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이러한 것에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러한 것으로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당연히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하실 때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시험입니다. 우선 마귀는 40일간 금식하신 예수님께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로 떡을 만들어보라는 말로 시험하였습니다. 이것은 물질에 대한 유혹이며 경제적 풍요에 대한 시험입니다. 또한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시험합니다. 이것은 권력에 대한 시험입니다. 마지막으로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실 것이니 여기서 뛰어내려보라고 유혹합니다. 이것은 지혜에 대한 유혹으로 종교적 성취감에 대한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유혹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돌로 떡을 만들라는 첫 번째 시험에 대해선 떡도 필요하지만 떡을 주시는 하나님을 더 신뢰하며 살겠다며 그 유혹을 거절하셨고, 천하만국을 쉽게 얻으라는 두 번째 유혹에 대해선 권력으로 섬김을 받기보다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시므로 이기셨고 마지막으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에 대해선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시험하기보다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순종하며 살겠다고 선언하심으로 사단의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시험받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시험이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또한 매일의 삶 가운데서 이러한 시험을 자주 경험합니다. 그렇습니다. 시험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에 올라 갈 때까지 우리는 시험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시험을 피해갈 수 없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런 시험을 받을 때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듯 계속되는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서 우리가 예수님처럼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성령 충만하셨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예수님이 어디로 가셨다고 합니까? 광야로 나아가 그곳에서 40일간 금식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광야로 나아가신 것이 스스로 가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가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광야에 가실 때 홀로 가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동행하셨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 부분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실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셨고 또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에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드리듯이 성령 충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 충만, 성령 충만 해야 한다고 하는데 ‘성령 충만’ 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충만’이라는 단어는 ‘가득 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내 영혼과 마음과 생각이 성령으로 가득 차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의미하고 성령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사로잡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1절을 보면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다는 말이며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뜻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잘 이해하려면 엡5:17절 말씀을 보면 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을 술 취함과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술에 취한 사람은 어떤 행동을 보입니까? 자기 이성을 잃어버리고 술의 지배와 조종을 받아 행동하게 됩니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는 할 수 없었던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행합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컨트롤하려고 해도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에 취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지배와 조종을 받아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성령 충만하면 지금까지 자신의 힘으로 하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 받아 성령으로 충만함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그렇게나 성령 충만이 중요한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이요 우리 스스로 유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 좋았던 사도 바울도 롬7:19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이 고백은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는 수십 번도 더 바르게 살아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또 죄를 짓게 되고, 사람들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미워하고, 누구누구한테 잘해줘야지 하다가도 또 잘못하는 행동들을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다시 감옥에 가는 분들 얘기가 무엇입니까? 안 그럴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살려고 했는데 하며 후회합니다. 왜 그렇게나 우리의 결심만큼 안 될까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선하게 사는 것을 가로막는것일까요? 내 속에 무엇이 있기에 원하는바 선은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성경은 롬7:2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날 너무 많이 방황했습니다. 지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많이 번민했습니다. 그리고 성적으로도 타락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죄를 자신도 차마 볼 수 없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이 세상의 정욕에서 건져 주소서’ 그리고는 곧 이렇게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지금 당장은 건져주시지 마옵소서’

이것이 우리 인간의 참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의 실상입니다. 내 속에 있는 악의 본능이 죄의 법이 나를 이기기 때문에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는 죄인인 것입니다. 파스칼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날마다 이깁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귀의 세 가지 시험에 패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해야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육체의 소욕을 꺾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님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롬8:13-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몸의 행실을 죽여야 죄의 법을 따라 행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의 유혹, 권력의 유혹, 지식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 충만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성령 충만하여 시험과 환난을 이긴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입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는 성령에 사로잡혀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고 많은 불신자들을 전도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반대자가 생겼습니다. 급기야 반대자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 집사를 돌을 쳐 죽게 했습니다. 그는 순교하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과 그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그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다 용서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능력이 어디서 오는 걸까요? 비 오듯 날아오는 돌을 맞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자신을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고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했던 그 모습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바로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스데반처럼 성령 충만하여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이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