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게 하시는 하나님 (창21:1-7)
이목사09-18 17:28 | HIT :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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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느덧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가 되었다.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지도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삭이 태어난다. 1절에서는 이삭의 출생과 관련하여 먼저 이렇게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말씀 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이 말씀 에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말씀하신 대로’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이 두 번이나 반복된다. 두 번이나 반복된다는 것은 강조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이삭의 출생이 그냥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는데 여기서 구약은 ‘옛 언약’ 즉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 언약’ 즉 ‘새 약속’이라는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책이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은 100%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도하면 응답받는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분명히 기도 응답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축복받는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분명히 축복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것 생각할 것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행동하면 된다. 그 때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2절을 보자. 드디어 사라가 아들을 낳는다.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라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 것이 우연한 때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에 즉 ‘정한 때’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정한 때’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걸 보면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그래서 전도서 말씀에도 ‘사람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한 것이고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 한 것이다. 맞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태어날 때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또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내 맘대로 살다가 떠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정한 때에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내 인생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미래의 일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인도하시되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 믿음으로 살기 바란다

아기가 태어났으니 이제 아이의 이름을 지어야한다. 3절을 보자.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아브라함이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했다 하는데 이삭이라는 이름을 아브라함이 직접 지은 것인가? 아니다.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다. 창17:19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이라 이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지어 주신 ‘이삭’이라는 이름에 대해 생각해보자. 먼저 이삭의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바로 ‘웃는다’는 뜻이다. 이름의 뜻을 통해 알게 보는 것은 이삭 이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라 정상적인 나이에 아이를 낳아도 정말 기쁜 일인데 백세에 아들을 낳았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아마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사라는 어떤가? 아마 아브라함보다 더 좋아했을 것이다. 사라는 이삭을 낳은 그 기쁨을 그래서 6절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다가 하나님을 통해 이삭을 낳게 됨으로 비로소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라는 어떻게 웃음을 잃어 버리게 되었을까? 성경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두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 두 가지 이유가 대체로 사람들이 웃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일반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첫째는 삶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라는 원래 ‘여주인’이라는 뜻의 ‘사래’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 이름만 놓고 보면 사라는 유복한 집에서 남부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 자랐을 것이다. 그러다 아브라함과 결혼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나름대로 잘 살았다. 그러던 중 남편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란을 거쳐 머나먼 가나안 땅으로 이민을 갔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려 할 때 기근이 들어 멀리 애굽으로 피난을 가야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기를 누이라고 속인 남편으로 인해 자칫 바로 왕에게 곤욕을 치를 뻔 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와 살면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야 했다. 그러던 중 그랄 땅에서 애굽에서와 같은 이유로 아비멜렉에게 또 곤욕을 치를 뻔했다. 자기 살기에 급급한 남편 때문에 사라는 참으로 마음 고생을 많이 하며 살았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또 노년에 머나먼 타국에서의 이민 살이는 그녀의 삶을 더욱 무겁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점점 웃음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아는가? OECD 34개 국가 중에 32위라고 한다. 굉장히 낮다. 왜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이렇게 낮을까? 한 마디로 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힘들고, 아이들 키우기 힘들고, 노후 준비가 안돼서 걱정스럽고, 미래가 불투명해서 불안하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힘든다. 그러니 웃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웃는 것이 비정상일 것이다. 그래서 다들 웃음을 잊고 산다.

두 번째는 심적 고통 때문이다. 잘 아는 것처럼 사라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오늘날이야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결혼한 여인이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을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여겼다. 그러니 사라는 견디기 힘든 마음의 고통을 날마다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다 더 이상 자녀가 없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자기의 몸종인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 아들을 얻었다. 그가 이스마엘이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아들을 낳으면 가실 줄 알았던 마음의 고통은 아들을 낳고 교만해진 하갈로 인해 또 다른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렇듯 마음이 고통 가운데 있는데 웃음이 나오겠는가! 나올 수 없다.

오늘날도 참 많은 사람들이 말 못할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현대에 왜 그렇게나 ‘우울증’ 환자가 많이 나오는지 아는가?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짓누르는 마음의 고통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다보니 겉으로 볼 때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마음에 병이 생겨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다. 이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웃을 수 있겠는가? 웃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라가 웃음을 되찾았다. 그녀가 평생 잊고 살았던 웃음을 되찾은 것이다. 정말 마음껏 속 시원하게 웃을 일이 생긴 것이다. 사라가 일평생 아이를 못 낳아 우울함 가운데 살았는데 나이 90에 아들을 낳은 것이다. 이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웃어도 보통 웃을 일이 아니다. 이 웃음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다는 ‘박장대소’로도, 얼굴이 엉망이 될 정도로 크게 웃는다는 ‘파안대소’ 로도, 그리고 배를 잡고 뒹굴며 웃는다는 ‘포복절도’로도 설명할 수 없는 웃음이며, 웃다가 죽어도 좋을 웃음인 것이다. 사라는 이 기쁨의 의미를 6절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자신을 하나님께서 다시 웃게 해 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는 사라의 고백이다. 깊은 절망 가운데서 웃음을 잃어버리고 그냥 죽지 못해 살아가던 사라에게 하나님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웃음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고 ,마음속에 가득했던 우울감도 사라지며, 마음속에 행복감이 가득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은혜 주신 것을 사라는 나로 웃게 하셨다고 표현한 것이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나로 웃게 하시는 분이시다. 사라에게 행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심으로 웃게 하신다. 살다보면 실지로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기도에 응답하신 것을 발견하고는 놀랄 때가 있지 않는가! 또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상황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지 않는가! 하나님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우리로 웃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따뜻하게 우리를 보살펴 주심으로 우리를 웃게 하신다. 1절에서 ‘하나님이 사라를 돌보셨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돌보셨다’는 말은 ‘기억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하나님은 자녀를 낳지 못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라를 기억하고 계셨다. 그리고 사라의 아픔에 함께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어 마침내 하나님은 그녀에게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셨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기를 기억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내 슬픔과 아픔 그리고 괴로움을 하나님이 모르실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아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기억하고 계신다. 그리고 가까이 하신다. 실지로 은혜 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전에는 몰랐는데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 께서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과 그리고 나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 하나님은 내 이름을 아신다. 나를 이해하신다. 나를 도우시고 힘주신다.

세상살이에 힘들어 다양한 문제로 인한 심적 고통으로 웃음을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계시고 행하고 계신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로 웃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삶 가운데 이런 놀라운 일들이 많이 나타나 얼굴에 웃음이 끊어지지 않는 나날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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