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예배자 (창4:1-8)
이목사08-13 11:12 | HIT :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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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튼튼한 집을 지으려면 기초 공사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집이 오래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변함없이 잘 하려면 기초를 잘 다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2주에 걸쳐 ‘주일성수’에 대해 알아보았고 이번에는 신앙생활의 핵심이 되는 ‘예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된다’ 이만큼이나 예배가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제1문항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최고 목적 즉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사람치고 예배를 안 드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도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배를 제대로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배가 되지 않는다면 그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은 똑같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아담과 하와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잘 아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범죄 하기 전 하나님의 동산에서 하나님과 늘 교제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그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비록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살고 있지만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들인 가인과 아벨에게 당연히 하나님에 대해 얘기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이 장성한 이 후에도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데 자기 나름대로 제물을 가지고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여 얻은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예배하였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라! 예배드리는 이들의 모습을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들은 예배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때가 따라 하나님께 예배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배 할 때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예물을 가지고 나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를 드렸느냐 드리지 않았느냐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되  예배를 제대로 드렸느냐 안드렸느냐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똑같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누구 예배는 받고 누구 예배는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도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잘못하면 하나님이 받지 않는 예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그 예배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쓸데없는 일 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돼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예배드리는 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통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이 두 사람이 드린 예배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3-5절을 보자!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은 땅의 소산 즉 곡식으로 제물을 삼아 예배했고 아벨은 양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예배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예배를 드린데 있어 뭐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은 것을 드린 제물과 관련해 하나님이 피의 제사를 원하셨기 때문에 양을 드린 아벨의 예배만을 열납하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합당치 않은 말입니다. 사실 가인이 곡식을 아벨이 양을 드린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이 아벨은 양치는 자요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이 잘못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레위기를 보면 5대 제사가 나오는데 거기에 쓰이는 제물들을 보면 소, 양, 염소 등 동물만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소제라는 것이 있는데 이 제사에는 곡물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놓고 보고더라도 동물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 있는 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아벨은 양을 드리되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양의 첫 새끼’란 아벨이 거둔 첫 소산이라는 것으로 가장 귀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쳤다는 의미입니다. 또 ‘기름으로 드렸다’는 것은 그 첫 양들 가운데 가장 살찌고 기름진 것을 골라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아벨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정성과 진심을 가득 담은 제물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제물의 종류에 있던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릴 때의 마음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제물이 아니라 마음 받기를 원하십니다. 히11:4에서는 가인과 아벨의 예배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예배를 드린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마음을 다해 정성스런 제물을 드리므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려면 아벨처럼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이나 정성도 없이  그저 매번 드리는 예배라고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깨달아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그 이름에 합당하게 예배하는 모든 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것은 ‘가인의 제물’만이 아니다. ‘가인과 그 제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가인이라는 사람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제물보다는 사람을 먼저 보십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의 인격과 생활이 제물보다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인의 예배는 제물의 문제이기 이전에 제물을 드리는 가인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인은 평소 자신의 삶과 행동이 어떠하든지 간에 예배라고 하는 종교 행위에만 충실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므로 사람이 스스로 그 마음을 속일지라도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 자신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한 산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우리 삶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실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경건하게 드리는데 삶이 엉망진창이라면 그런 사람의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와 삶이 분리되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처럼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대하듯 목사님을 대하듯 성도들을 대하듯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거룩하고 경건한 삶이 되어질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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