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를 날려버리라 (마6:25-33)
이목사08-07 09:10 | HIT : 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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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염려하며 삽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걱정이나 염려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염려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걱정이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인간 공통의 감정이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걱정거리가 많은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걱정하고 염려할까요? 해답을 멀리서 찾지 말고 오늘 본문에서 찾아봅시다. 본문에서는 ‘목숨’과 ‘몸’ 때문에 염려한다고 합니다.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고,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에서 놓고 본다면 목숨과 몸을 위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것이기에 그것을 위해 염려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씀합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 하시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염려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왜 신앙생활에 해로울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염려’라는 말의 어원적 뜻을 알아야 합니다. ‘염려’는 어원상 ‘마음을 나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염려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만 집중하고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방해하기에 신앙생활에 해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염려가 부질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염려한다고 염려하는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봅시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만약 키가 작아서 늘 고민하는 분이 있다합시다. 날마다 날마다 키가 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으면 어떡하지, 키가 커야 하는데’ 라고 염려하면 키가 크겠습니까! 클리가 없습니다. 염려하면 변화가 일어납니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괜히 염려하면서 마음의 평화까지 잃어버립니까? 결국 염려하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습니까? 염려합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염려하지 않고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염려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를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30절을 보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이 적기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아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와 들의 백합화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와 들의 백합화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실까요 안여기실까요? 귀하게 여기십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으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길러줍니다. 또 들의 꽃, 스스로 수고하지 않아도 그렇게나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도 귀하게 여기시고, 들의 꽃도 귀하게 여기시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아십니까?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라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기까지 할 만큼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32절,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고 했는데 그렇게나 귀하게 여기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채워주십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니 쓸데없이 아무 필요 없는 염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5: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권고하다는 것은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알고 계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염려하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능력도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염려하는 문제를 하나님께 다 맡기면 하나님이 돌보아주심으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음이 적다보니 맡기지를 못함으로 늘 염려투성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을 때  걱정과 염려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평안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염려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무엇을 향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속적 욕망과 욕심을 바라보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욕망과 욕심의 노예가 되어 우리의 마음에 염려가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 가운데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만 바라보는 삶이 될 때 모든 염려로부터 자유케 될 것입니다.    
  
둘째, 나 자신의 작은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염려는 위축된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자신의 무능력 앞에 머물러서는 절대로 염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나는 무능력 하지만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다’는 믿음을 가질 때 더 이상 내 앞에 있는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담당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만큼 우리를 능력있게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만큼 강해질 수 있고 우리의 마음에서 염려는 기를 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염려의 마음이 있습니까? 그럼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순간 염려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넷째,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33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먼저’라는 것은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마음이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삐뚤어진 우선순위가 염려투성이 삶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에서 자유케 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정신 질환이 걱정, 또는 염려라고 합니다. 심지어 염려는 가장 치사율이 높은 악성 바이러스라고도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미국 군인의 수가 30만 명이었는데 아들과 남편을 전장에 보내고 염려와 불안 가운데서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이 무려 100만 명이 넘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도가 지나친 걱정과 염려는 이토록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염려와 걱정, 우리가 꼭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간적인 힘으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믿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살 때 비로소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하나님이 돌보시리라” 주 안에서 평강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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