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으로 인해 산다 (창20:1-7)
이목사07-29 19:12 | HIT :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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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신 분들은 오늘 본문을 읽으며 전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창12장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고 있을 때,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피신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 땅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빼앗기 위해 자기를 죽일 것을 두려워해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적이 있다. 그로인해 하마터면 아내를 빼앗길 뻔했는데 하나님이 직접 개입해 주셔서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때와  똑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는 것을 보게 된다.

1-2절을 보자.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으니” 전에는 애굽에서 이런 일을 당했는데 이번에는 그랄로 내려갔다가 거의 똑같은 일을 겪는다. 하지만 내려간 이유는 좀 다르다. 애굽에 내려간 것이 기근 때문이라면 그랄로 간 것은 아브라함이목축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축들의 먹이를 따라 그랄로 내려간 것으로 본다.

지금 이 일은 애굽에서의 일이 있은 후로 25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다.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25년 전이나 후나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비슷한 상황에서 똑같이 행동한다. 사실 25년이란 시간동안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해졌는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좋아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으로서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삶에서 아브라함은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이 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변할까? 지식이 많아지고 사회적 경륜이 쌓이면 변할까?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나면 변할까? 그러지도 않은 것 같다. 만약 이런 것들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세상에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이 변화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변화는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나이가 들어도 지식이 많아져도 사회적 경륜이 쌓여도 고난을 많이 겪어도 잘 변화되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방법이 있다. 그러나 먼저 확실히 해둘 것이 있다. ‘내가 변화되고자 한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말은 ‘본질적인 변화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변하게 해 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변화되기 원하는 부분을 놓고 하나님께 나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변화된다. 종종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교회를 다니면 사람이 좀 변화될 줄 알았는데 별로 변한 것이 없네’ 그러면서 ‘교회 다녀도 소용없어’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 이런 말을 우리가 듣는다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되겠지만 사실 삶의 변화는 믿는다고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을 우리는 ‘성화의 과정’이라고 부른다. 성화는 오랜 시간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 서서히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잘 변화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낙담해하지 말기 바란다. ‘예수님을 믿으니까 이 정도라도 된다’고 생각하여 기도하면서 성령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인해 실수를 반복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봤는데, 이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내 치시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용서하시고 다 받아들여 주신다. 아마 아브라함이 세 번, 네 번 같은 실수를 해도 하나님은 계속 용서해주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우리가 잘못할 때 계속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또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주저하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시니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납해 주실 것이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품으로 나오시기를 바란다.

아브라함이 그릇 행하여 결국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기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말했으니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답답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렇듯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다. 3절을 보라.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 이라”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데려온 여인이 사실은 아브라함의 아내다 말씀하시며 ‘그 여인을 건드리면 죽는다’ 경고하신다.

하나님은 이렇듯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신다.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지만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호해 주신다. 본문에서처럼 필요하면 꿈에서 라도 나타나셔서 위기를 막아 주신다. 할렐루야. 이런 일이 아브라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요 택한 백성들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래서 지금도 이런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잊지 마라.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지켜주신다. 보호해주신다. 인도해 주신다. 위험에서 건져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분들의 삶 가운데 충만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를 들은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분명히 자기의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했기에 자기 는 데려온 것뿐이라 말한다. 사실 아비멜렉의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그에게 잘못은 없다. 오히려 잘못이 있다면 거짓말로 속인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있다. 그렇다면 진노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왜 억울한 아비멜렉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의 말씀까지 하시는 것일까? 우선 하나님의 의도는 ‘그 여인을 범하지 말고 빨리 돌려보내라’는 뜻이다. 결국 아비멜렉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언 듯 생각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이 무관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지은 자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다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그것이 ‘일반은총’이다. 일반은총이 뭔지 아시죠?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공기나 물 같은 것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그 은총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같은 경우는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래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자녀를 왜 사랑하는가? 부모 말 잘 들어서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 자녀를 낳았다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망나니 같은 자녀라 할지라도 모르는 사람에게 유산을 물려주지는 않지 않는가!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요, 부모의 사랑이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흠이 많고 잘못이 많은 우리를 그래도 끝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은 우리가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자녀 삼아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이다. 그래서 시48: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한 것이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일평생 이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기도를 받으라 명령한다. 7절이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아비멜렉은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낸다. 그런데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재물과 함께 돌려보낸다. 그리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정말 기도를 받는다. 그리고 그 기도의 결과로 그의 아내와 여종이 출산하지 못했는데 출산하는 복을 받게 된다.

믿는 자의 기도가 이렇게 중요하다. 이렇게 능력이 있다. 앞에서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롯을 구해주지 않았는가! 또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집의 닫힌 태를 모두 열어 주시지 않았는가!

그렇다. 믿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다른 조건이 없다. 도덕적으로 완전해야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다. 행위가 완전해야 들어주시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으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 들어 주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 듣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이 택하신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 우리는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부족함이 있다. 우리는 지금 기도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모든 일들을 기도로 행해야 한다. 기도보다 앞 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도만이 나를 변화시키고 기도만이 나를 살린다. 기도만이 우리의 가정을 살릴 수 있다. 기도만이 꽉 막힌 현실의 장애물을 뛰어 넘을 수 있다. 기도만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기도만이 우리를 승리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성도라 이름 붙여진 사람들이다. 성도라 이름 듣는 우리들, 비록 우리가 성도다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그런 사랑으로 인해 사는 자들이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은혜 베풀어 주신다. 그러므로 어떤 자리,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지 희망과 소망을 잃지 마시기 바란다. 오직 주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란다. 이런 은혜가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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