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없는 사랑으로 산다 (창19:12-22)
이목사06-20 20:26 | HIT : 423

UPLOAD 1 ::65.jpg (27.5 KB) | DOWN : 27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소돔을 살피기 위해 그곳에 내려간 두 천사가 롯을 만나 그의 영접을 받는 것을 보았다. 두 천사는 롯의 집으로 들어가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에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모여 들더니 롯을 불러 집에 들어온 두 사람을 끌어내라 요구한다. 이에 롯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보호하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 그들을 대신하여 자신의 딸까지 내어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하지만 군중들은 더 살기등등하여 이제는 롯까지 위협하며 문을 뜯고 들어오려 했다. 그 때 천사가 문을 열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순식간에 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어 그들이 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이제 드디어 이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 이상 살필 것도 없다 이제 자비 없는 심판만 남은 것이다.    
    
12절을 보자.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멸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천사는 롯에게 이제 곧 심판이 시작될 것이니 네게 속한 사람들을 이끌고 이 성 밖으로 나가라는 지시를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롯뿐만 아니라 롯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롯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행16:31절에서 말씀했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롯의 가정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롯의 경우를 보니 롯의 가족들은 롯 때문에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았구나. 그럼 내 가족들도 나 때문에 다 구원받을 수 있겠구나’ 어떤가? 맞는 말인가? 아니다.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 가족들이 자동적으로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자동으로 구원받는 것은 없다. 가만히 있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뒤에 나오지만 롯의 말을 듣고 롯을 따라 나온 사람만이 구원의 은총을 받았다. 결국 우리가 아무리 가족이라도 전한 복음을 듣지 않으면 함께 구원의 자리에 설 수 없다. 구원은 절대적으로 자기의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혹시 가족들 가운데 아직까지 믿음을 갖지 못한 분이 있는가? 그렇다면 가족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기 바란다. 실지로 마지막 날 나만 구원받고 사랑하는 가족 가운데 구원받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심판의 날을 추상적인 날로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그 날은 분명히 온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는 가족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 가정에 구원받지 못하는 가족이 단 한사람도 없기를 바란다. 함께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기를 바란다.  

롯은 천사의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뛰어 나간다. 14절을 보자. “롯이 나가 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롯이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딸들의 남편이 될 사람들 이니 구원하고 싶었겠죠. 그래서 급한 대로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곧 이 성을 멸하실 것이니 너희들은 일어나 이 성을 떠나야 한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본문에서는 그 사위될 사람들이 롯이 전한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말씀한다. ‘농담으로 여겼다’는 것은 ‘비웃다’, ‘희롱하다’는 의미로 롯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일이 ‘노아시대’에도 있었다.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은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높은 산에 방주를 지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온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날씨가 이렇게 좋고 세상이 이렇게 평화로운데 무슨 심판이 있느냐?’며 노아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심판의 때가 되자 하늘이 열리고 땅이 터져 물이 세상을 뒤덮었고 노아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던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만약 누구라도 노아의 말을 들었다면 그들은 분명히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긴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들으시기 바란다. 노아시대 사람들이나 소돔 사람들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해도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한 말씀도 버릴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말씀을 아멘 으로 받으시기 바란다. 비록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되는 말씀이라도 아멘으로 받으면 그 말씀이 우리 삶에 복이 된다.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결국 시간이 흘렀지만 롯은 사위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심판의 때가 가까웠다. 천사가 롯을 재촉한다. 15-16절이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 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지금 천사는 마음이 급하다. 심판의 시간이 아주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롯과 그 가족들을 빨리 이 성을 빠져나가게 하려 한다. 그런데 롯은 천사의 마음과 달리 자꾸 지체한다. 머뭇거리고 주저한다. 그러자 보다 못한 천사들이 롯과 그의 가족들의 손을 강제로 잡아서 그곳에서 데려 나온다.  

롯 참 답답하죠. 지금 떠나지 않으면 소돔이 멸망당할 때 함께 죽을 수도 있는데 왜 롯은 자꾸 떠나지 못하고 주저하며 지체한 것일까? 아마도 ‘미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롯이 이곳에서 지금까지 일궈놓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나갈 때 나가더라도 가져가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자기의 땀과 노력의 결과물들을 그냥 고스란히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겠는가!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것들이 소중하고 그래서 아까워도 그 모든 것들이 자기 생명보다 귀하겠는가! 아니죠.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것을 위해서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것이고 덜 중요한 것은 세상과 관련된 것들이다. 성경적 표현으로 말하면 ‘썩어질 것’과 ‘썩지 않을 것들’이다.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썩을 것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썩지 않을 것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의 우선순위는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사람이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서야 되겠는가? 모든 분들 롯처럼 세상의 것에 너무 미련을 두지 말기 바란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불타 없어질 것들이다. 영원히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없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지를 분명히 하기 바란다. 영원히 쇠하지 않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기 바란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 주저하는 롯과 그의 가족들을 강제적으로 끌고 나온 천사들은 그들 에게 이렇게 말한다. 17절이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지금 소돔에서 나왔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머무르면 죽을 수 있으니 저 앞에 있는 산으로 빨리 도망가야 살 수 있다한다. 이 말씀은 단편적으로 보면 소돔의 심판이 너무 엄청날 것이기에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 거기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멀리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이겠죠.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의 영적인 삶에 대입해보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해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 달려가는 이 생활이 ‘신앙생활’이다. 그러면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라’하죠.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이다. 예수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에 미련을 두지 말기 바란다. 또한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푯대를 향해 가다보면 신앙생활을 위협하는 유혹들이 우리 앞을 가로 막을 때가 있을 수 있다. 그 때 그런 것 때문에 머뭇거리면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자전거 탈 때를 생각해보라. 주저주저하고 머뭇거리며 정지하면 넘어지지 않는가! 자전거가 잘 달리기 위해서는 계속 패달을 밟아야 하지 않는가! 그것처럼 다른 것 바라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며 즉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의 패달을 열심을 밟을 때 우리는 넘어지지 말고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뒤돌아보지 말라. 머뭇거리지 말라.

앞에 있는 산으로 열심히 달려서 생명을 구원하라는 천사의 말을 들은 롯은 어떻게 했을까? 18-19절이다.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롯이 지금 달려갈 힘과 용기를 잃고 푸념하듯이 자기는 저 산까지 못가겠다고 한다. 가기 전에 재앙을 만나 죽을 것 같다한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20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산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성읍으로 가게 해달라 말한다. 그러자 천사가 말한다. 21절이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리”

하나님 참 대단하시지 않는가! 자기와 가족을 구원해준 것에 대한 감사도 없고 투정만 부리는 롯에게 계속해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않는가! 여러분 이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좋은 사람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다. 믿음이 별로 없고 투정만 부리는 사람도 똑같이 사랑하시며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당시 멸시받고 천대받던 사람들 예를 들면,  세리와 귀신들린 자, 불치병에 걸린 자들을 만나 주셨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다. 그렇다. 주님은 여자든 남자든, 권세 있는 자든 권세 없는 자든, 작은 자든 큰 자든, 믿음이 좋은 자든 믿음이 적은 자든, 이런 것에 상관없이 사랑하신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차별 없는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았고, 그 사랑으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줄로 믿는다. 감사하자. 그 큰 사랑에 감사하자.

정말 우리는 주님의 은혜 때문에 산 사람들이다. 그리고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원한 주님의 그 큰 사랑이 있었기에 노아 대 사람들처럼 소돔 사람들처럼 멸망당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큰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 모두 뒤돌아보지도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고 오직 푯대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자. 하늘 소망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다. 오늘도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라는 신앙고백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주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