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자 (창18:16-21)
이목사06-04 23:14 | HIT :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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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말씀 가운데 가장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라에게 하신 말씀이다. 따라하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다른 말로 ‘여호와께 어떤 일이 어려운 일이겠느냐’다. 이 말씀의 의미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라도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일도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믿는가? 믿으시기 바란다. 왜 믿어도 되냐면 이 말씀은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라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여 속으로 웃는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말라. 지난주에 말씀 드린 대로 ‘하나님’만 믿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기 바란다. 예수님 앞에 나온 병자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을 때 치료의 역사를 체험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 얼마든지 우리 삶의 문제들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과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자. 신뢰하는 만큼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를 드시고 사라에게 하실 말씀을 마치신 하나님은 이제 또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신다. 16절이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하나님이 향한 곳이 어디인가? 소돔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목적이 소돔을 방문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떠나기 전 하나님은 배웅 나온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말씀을 하신다. 오늘은 이 특별한 말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17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 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소돔으로 향하려던 하나님께서 잠시 멈춰서시더니 아브라함에게 ‘내가 하려는 것을 너에게는 숨기지 않겠다’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겠다는 것이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겠는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에게 있어 아브라함은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성경 구절이 있다. 사41:8절이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 말씀하지 않는가!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정말 아브라함과 친근하고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다른 사람은 없을까? 있다. ‘모세’가 그런 사람이다. 출33:11절 보자.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란 모세가 하나님과 거리낌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통 분인가? 이 세상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 아니신가? 그런 분과 이런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니, 정말 놀랍고 부러운 일 아닌가? 하지만 부러워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도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이 하나님과 그런 친밀한 사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앞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렇게 생각해보자.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하면 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만나는 것이다. 자주 만나면 친해진다. 그래서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말이나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많이 만나면 친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친해지려면 자주 만나면 된다  어떻게 만날 수 있나?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예배’다. 예배만 잘 드려도 하나님과 친해질 수 있다. 또 ‘말씀’을 읽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친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며(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면 확실히 친해진다. 아무리 친했던 사람도 한동안 만나지 못하면 사이가 어색해지지 않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만나지 않으면 어색해진다. 사이가 시들해진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만나기 바란다. 특히나 오늘날 코로나로 인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제약을 받아 하나님과의 사이가 소원해질 수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럴수록 더욱 하나님 만나는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하려는 것을 숨기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먼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축복하신다. 18-19절이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야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 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한다. 하나는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아브라함으로 인해 우리가 복을 받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인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가 누구를 통해서 복을 받게 된다고요? 예수님을 통해서 복을 받는 것이다. 모든 복은 예수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떠나서는 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도 늘 주님 안에 거해야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분들 주님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영육간의 풍성한 복을 받으시기 바란다.      

또 하나는 자손들이 진정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여호와의 도’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맞다. 우리가 주님 안에 살아서 주님이 주시는 복을 우리만 받으면 되겠는가? 아니다. 모두 똑같은 마음일텐데 나보다 자손들이 더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여호와의 도를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줄 믿는다.  

그리고 ‘내가 하려는 것을 숨기지 않겠다’ 말씀하시며 두 번째로 소돔과 고모라 심판하 실 것을 말씀하신다. 20-21절이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 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 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려 하시는 것일까? 죄악이 심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소돔 과 고모라의 죄악을 말하면서 그곳으로부터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말씀하는데, 이 부르짖는 소리가 바로 죄악으로 인한 사람들의 원성 소리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한 가지는 죄는 부르짖는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죄는 그냥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죄는 소리를 지른다. 남을 억울하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학대하고, 고통을 주면 그 고통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 하는 소리가 하나님의 귀에 들린다. 다른 사람 억울하게 눈물 흘리게 하지 마라. 고통스럽게 하지 마라. 만약 누군가에게 그렇게 하면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소리가 하나님께 들린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은 모든 소리를 들으신다는 것이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 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압제를 당하여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그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었다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구원시키지 않았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모든 소리를 다 듣고 계신다. 우리의 기도소리, 당연히 듣고 계신다. 우리가 믿음 없이 하는  소리 당연히 다 듣고 계신다. 불평하는 소리, 원망하는 소리, 모의하는 소리, 다 듣고 계신다. 그래서 말도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된다. 가려서 해야 한다. 믿음의 말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말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소돔과 고모라의 심각한 죄악상을 다 알고 계시는데 왜 굳이 소돔과 고모라를 방문 하시는가다. 이유가 뭘까? 모든 것을 다 아시니 바로 심판하면 되지 이렇게 방문하실 이유가 뭐가 있을까?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기 위해서 방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실제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을 때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면서도 아담의 죄를 추궁하기 전에 아담에게 ‘어디 있느냐’ 부르지 않았는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죄를 자백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가인에게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 물으셨다.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죄를 미워하신다. 그래서 죄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죄인들이 다 심판받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오래 참으시는 것이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심판의 시기를 늦추시는 것이다.  

오늘날도 그렇지 않는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얼마나 죄악으로 가득한가! 말로 다할 수 없는 죄악들이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사람이 보기에도 ‘말세다 말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하나님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이 세상이 아직은 심판가운데 있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심판을 못하셔서 안하시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데도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참으시고 또 참으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언제든지 심판의 날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시대를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자.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언제 심판의 날 즉 재림의 날이 임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남겨진 시간 동안 우리에게 주신 사명 즉 축복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자. 특히 더 많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일에 더욱 힘을 내자. 온 세상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온 맘을 다해 전하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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